「부사의방장과 진표 율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1160
한자 不思議房丈-眞表律師
이칭/별칭 「불사의암(不思議庵)」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시대 시대 미상
집필자 김영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0년 - 「부사의방장과 진표 율사」 『전설지』에 수록
관련 지명 의상암 -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백련리지도보기
채록지 중계리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지도보기
성격 설화|고승담
주요 등장 인물 진표 율사
모티프 유형 고승 신이(神異)|사찰 연기(緣起)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백련리에서 진표 율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진표 율사(眞表律師)는 통일 신라 시대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승려로, 성은 정씨이고 아버지는 진내말(眞乃末), 어머니는 길보랑(吉寶娘)이다. 12세에 출가하여 금산사(金山寺)에서 사미계법(沙彌戒法)을 받았으며, 760년(경덕왕 19)에 변산불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서 계법을 구해 762년에 지장보살과 미륵보살로부터 교법(敎法)을 전해 받고 산에서 내려왔다. 김제의 금산사를 중창하고 이때부터 금산사에 머물면서 해마다 개단(開壇)하고 교화를 폈다. 이후 금산사를 떠나 속리산·강릉·금강산 등에서 중생을 교화하였다.

진표 율사가 수행한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은 변산 최고봉인 의상봉 동쪽에 있는 절벽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험준한 수행처이자 종교적 성지로 알려진 곳이다. 부사의방장은 ‘세상의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진표 율사가 이곳에 거처하며 수행하였고 원효 대사, 의상 대사, 부설 거사, 진묵 대사 등도 이곳에서 수행했다.

[채록/수집 상황]

1990년 전라북도에서 간행한 『전설지』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주민 김영조[남, 63세]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내용]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변산에서 가장 높은 의상봉 동쪽 절벽 중간에 있는 네 평 정도의 ‘반석굴’을 말한다. 부안 사람들은 ‘다래미 절터’라 하기도 하고, ‘손처사굴’이라고도 하는데 다람쥐나 올라가서 살 수 있는 절이란 뜻이라고 한다. 이곳은 지형이 너무 험준하여 의상봉 꼭대기에서 100여 척이 넘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데 절벽에 굴처럼 패인 4평쯤의 넓이 안에 암자를 겨우 지어 쇠줄로 매달았다고 하여 그 쇠줄을 매었던 쇠말뚝이 지금도 굴 벽에 박혀 있다. 이 부사의방장에서 신라 시대의 고승인 진표 율사가 수도를 하여 지장보살의 현신을 맞아 계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진표 율사부사의방장에서 수도한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진표 율사가 27세 되던 무자년에 쌀 20되를 쪄서 말려 양식을 만들어 가지고 부안현 변산에 있는 부사의방장에 들어갔는데 5합을 가지고 한 달을 먹고 그중에 한 홉은 떼어 쥐를 기르면서 미륵상 앞에서 몸소 계법을 구했다.”

찐 쌀 5합으로 한 달을 연명하면서 도를 구하고 그 높은 산 절벽의 암자까지 찾아간 쥐에게 또 한 홉을 나누어 주면서 같이 살아간 진표의 불심이 참으로 자비롭다고 할 만하다. 1932년 고적지 탐방을 하던 오두섭, 김용성, 신현식 등 세 사람이 이곳을 답사하였는데 줄을 타고 내려가 보니 깎아지른 듯한 절벽 굴에 작은 집 한 채가 들어앉을 만한 평평한 바위가 있고, 그 바로 아래에 옹달샘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거기에서 높이 10㎝ 정도의 금부처 하나를 습득하여 월명암에 기증하였다고 하며, 50여 장의 벽돌을 한쪽에 잘 쌓아 두고 내려왔다고 전한다.

또 『동국여지승람』에는 “신라의 중 진표가 붙어살던 곳인데 백여 척 높이의 나무 사다리가 있다. 사다리를 타고 방문 내려올 수가 있으며 그 밑은 무시무시한 골짜기다. 쇠줄로 그 암자를 매어 당겨 못질하였는데 세상에서 말하기를 바다의 용이 한 짓이라고 전한다.”라고 되어 있다. 깎아지른 절벽의 굴에 암자를 지어 쇠줄로 매달아 놓은 것은 바다의 용이 조화를 부려 한 짓이라는 이야기가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이규보(李奎報)[1168~1241]는 부사의방장을 찾아와 다음과 같이 시를 남기기도 했다.

홍촉위제각저장(虹矗危梯脚底長)[무지개 같은 사다리 발밑에 뻗쳤으니]

회신직하만심강(回身直下萬尋强)[몸을 돌려 만 길 아래로 내려가네]

지인이화금무적(至人已化今無跡)[지인(至人)은 이미 가고 자취조차 없는데]

고옥수부상불강(古屋誰扶尙不僵)[옛집 누가 돌보는지 지금도 그대로네]

장육정종하처현(丈六定從何處現)[장육(일장 육척의 불상)은 어느 곳에 나타나는가]

대천유가개중장(大千猶可箇中藏)[광대무변한 대천세계가 이 속에 감춰져 있네]

완산리은망기객(完山吏隱忘機客)[완산의 이은(吏隱)인 망기 객이]

세수래분일판향(洗手來焚一瓣香)[손을 닦고 한 줌의 향기 불사르러 오네]

진표 율사부사의방장에서 오랜 수도 끝에 미륵불의 계법을 구하고 어느 날 새벽 의상봉에 올라 멀리 동쪽을 바라보니 동쪽 하늘가에 부처님의 눈부신 배광(背光)이 찬란하게 뻗쳐 그 빛을 따라가 발을 멈추니 그곳이 지금의 김제 금산사(金山寺) 자리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는 부처님께서 가르치는 계시라 깨닫고 그 자리에 금산사를 세우고 미륵 부처님을 모셨다고 전한다. 진표 율사부사의방장에서 아무리 공부해도 도를 깨닫지 못하여 한때는 죽으려고까지 하다가 마음을 새롭게 고쳐먹고 다시 공부하여 도를 깨우쳤다 하니 부사의방장진표를 다시 태어나게 한 영지(靈地)라고 할 만하다.

[모티프 분석]

「부사의방장과 진표 율사」의 주요 모티프는 ‘고승 신이(神異)’, ‘사찰 연기(緣起)’ 등이다.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고승의 깨달음 혹은 그 깨달음의 깊이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고승 설화이다. 그런데 깎아지른 절벽 굴에 암자를 지어 깨달음을 얻은 진표 율사의 수도담이 부안의 특정 지명 ‘의상봉 부사의방장’과 연계되어 구전됨으로써 사실성을 확보하고 있다. 아울러 이 이야기는 부안 지역의 불교문화적 환경과 영향력을 짐작케 하며, 그 속에서 진표 율사의 전승력이 확보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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