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동과 네 진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1171
한자 君子洞-進士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
시대 시대 미상
집필자 김선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0년 - 「군자동과 네 진사」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 군자동 주민 김병대[남, 65세]로부터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0년 - 「군자동과 네 진사」 『전설지』에 수록
관련 지명 군자동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지도보기
채록지 군자동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지도보기
성격 설화|지명 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김경정|네 아들
모티프 유형 태몽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에서 군자동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군자동과 네 진사」는 김경정이 태몽을 꾸고 얻은 네 아들이 사마시에 모두 급제하였으나 벼슬을 구하지 않고 초당을 지어 후진 양성에 힘썼으니, 마을 사람들이 네 형제를 군자라고 칭하였고, 이 마을 이름을 ‘군자동’으로 삼았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0년 전라북도에서 펴낸 『전설지』의 508쪽에 「군자동과 네 진사」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는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 군자동 주민 김병대[남, 65세]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내용]

조선 선조 때 지금의 부안군 월천면에 주부(主簿) 김경정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의 아버지는 성종 때 성균관 진사를 한 사람으로 집안 대대로 학문을 숭상했다. 김경정이 어느 날 태몽을 꾸었는데 네 마리의 흰 염소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꿈이었고, 김경정은 네 아들을 낳았다. 네 아들의 이름은 각각 김전, 김횡, 김명, 김협으로 네 아들 모두 총명하고 재주가 있었다. 큰 아들 김전을 비롯하여 형제들이 모두 사마시에 급제하여 인근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둘째 아들 김횡은 진사시에 장원, 생원시에 2등으로 급제하였다. 셋째는 과거를 보지 않고 공부만 하다가 주변의 권유로 환갑에 응시하였는데 생원, 진사 시험에 모두 급제했다.

이들 네 형제는 구차하게 벼슬을 구하지 않고 당파 싸움 속에서 더럽혀지지 않고 후진을 양성하는 데 힘쓰자고 다짐하고 마을 앞 시냇가에 초당을 짓고 대나무를 심었다. 마을 사람들이 네 형제를 ‘군자’라고 칭하였고, 이 때문에 이 마을을 ‘군자동’이라고 하게 되었다. 둘째 김횡의 호는 죽계이고 셋째 김명의 호는 화곡이다. 김횡과 김명유천사에 배향되었다. 두 사람은 율곡 이이, 월사 이정귀와 친분이 두터웠는데 이정귀가 김명에게 벼슬길에 나오기를 권했으나 정중히 사양했다. 김명은 문장이 뛰어나서 정유재란에 불에 탄 향교와 부안 객사인 부풍관을 신축할 때 상량문을 지었는데 그 글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모티프 분석]

「군자동과 네 진사」의 주요 모티프는 ‘태몽’이다. 아버지의 꿈에 네 마리의 흰 염소가 나타났고 집안에 네 형제가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네 형제 모두 선비다운 풍모를 지니고 과거에 급제한다. 「군자동과 네 진사」의 전반부에 소개된 흰 염소 태몽은 문명(文名)으로 집안을 빛나게 한 네 형제의 탄생과 성장에 신성한 색채를 더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환갑이 넘어 처음으로 과거에 응시한 셋째 아들 김명은 문장이 당대 제일로 부안 객사 부풍관과 부안향교의 상량문을 지었다. 네 형제의 출중한 능력과 인품을 드러내는 내용의 「군자동과 네 진사」 이야기에는 네 형제의 출생과 업적으로 인해 이름이 생기게 된 군자동 지역민들의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투영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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