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 대사와 월명각씨 전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1157
한자 義湘大師-月明角氏傳說
이칭/별칭 「월명각씨와 의상대사」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시대 시대 미상
집필자 김영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2년 - 「의상 대사와 월명각씨 전설」 『변산의 얼』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0년 - 「의상 대사와 월명각씨 전설」 『전설지』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1년 - 「의상 대사와 월명각씨 전설」 『부안군지』에 수록
관련 지명 월명암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내변산로 236-180[중계리 산96-1]지도보기
성격 설화|고승담
주요 등장 인물 월명각씨|의상대사|불목하니
모티프 유형 승전(僧傳)|득도 양상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월명암에서 의상 대사월명각씨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의상 대사(義湘大師)는 625년(신라 진평왕 4)에 태어나 702년(성덕왕 1)에 입적한 스님으로, 통일 신라 시대 화엄종을 개창하였다. 성은 김씨이며, 김한신(金韓信)의 아들로서 계림부(鷄林府) 사람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2년 부안군에서 발행한 『변산의 얼』에 「월명각씨(月明角氏)와 의상 대사(義湘大師)」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는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지서리 주민 홍용호[남, 70세]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1990년 전라북도에서 간행한 『전설지』에도, 1991년 부안군에서 편찬한 『부안군지』에도 각각 재수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내용]

의상 대사는 통일 신라 초 문무왕 때의 이름 높은 고승이다. 그는 일찍 변산의 마천대(摩天臺)라고 하는 의상봉(義湘峰)[倚上峰, 해발 508m] 북쪽에 의상암을 짓고 수도에 전념하고 있었다. 한편 여기에서 서남쪽으로 떨어진 월명암에서는 부설 거사의 딸 월명각씨가 수도를 하고 있었다. 이 둘은 가끔 만나 불교 교리를 토론하기도 하고 월명각씨의상 대사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이때 의상 대사는 벽돌로 집을 짓고 하늘로 날아올라가 음식을 받아먹는 천식(天食)을 하였으며, 월명각씨를 만날 때도 공중으로 날아다녔다고 한다.

월명각씨가 홀로 수도를 하고 있던 월명암에는 불목하니가 한 명 있었다. 그런데 이 불목하니가 월명각씨를 깊이 사모하여 어느 날 방안에 뛰어들어 월명각씨에게 사랑을 하소연했다. 월명각씨의상 대사를 찾아가 이 문제를 상의하자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의상 대사는 ‘수도하는 사람도 인생(人生)으로써 음양의 이치와 자연의 섭리를 모르고서는 큰 도를 이룰 수 없으니 허락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이에 월명각씨는 불목하니의 청을 들어주게 되었다. 그러나 불목하니는 월명각씨가 자신의 아내가 된 것으로 착각하고 밤낮으로 월명각씨에게 귀찮게 굴었다. 월명각씨는 참다못해 다시 의상 대사를 찾아가 상의하였다. 의상 대사가 크게 노하여 월명암으로 날아와 불을 때고 있던 불목하니를 발로 차서 아궁이 속에 밀어 넣어 죽이고 말았다. 결국 사람을 죽인 의상은 생불(生佛)이 되지 못하고 불목하니의 소원을 풀어 준 월명각씨는 생불이 되어 지금도 가끔 월명암 우물가에서 빨래하는 월명각씨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월명각씨와 의상 대사」의 주요 모티프는 ‘승전(僧傳)’, ‘득도 양상’ 등이다. 이 이야기는 성과 속, 세속의 사랑과 수도자의 교리 사이에서 보여주는 고민과 역설을 변산 민중들은 어떻게 인식하는지 투영된 설화이다. 변산월명암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의상 대사월명각씨가 엮어내는 성과 속의 모순과 갈등 속에서 의상 대사의 득도가 부족함을 보여주고 있다. 고승으로 알려진 의상 대사는 생불이 되지 못하고, 세속적인 불목하니의 사모의 정을 풀어 준 월명각씨는 생불한다는 화소를 통해 세속적인 것의 중요성도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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