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447
한자 驛里山城
이칭/별칭 고성산 산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행안면 역리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강원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역리 산성 - 전라북도 부안군 행안면 역리지도보기
성격 산성
양식 테뫼식 산성
크기(높이,길이,둘레) 535.6m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행안면 역리 고성산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고려 시대 산성.

[개설]

역리 산성(驛里山城)은 해발 68.3m의 고성산(古城山) 정상부와 남쪽으로 두 갈래로 뻗어 내린 산줄기를 감싸고 있는 토성이다. 통일 신라 시대~고려 시대 부령현(扶寜縣)의 치소지(治所地)로 알려져 있다.

[건립 경위]

삼국 시대에 부안은 백제의 개화현(皆火縣)이었으며, 당시 치소지는 현재의 구지리 토성(九芝里土城)으로 추정되고 있다. 통일 신라 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부령현으로 개칭되어 지금의 정읍시 고부면 일원인 고부군(古阜郡)의 영현(營縣)이 되었다. 고려 시대인 1018년(현종 9)에 고부군의 속현(屬縣)이 되었다가 후에 감무(監務)를 둠으로써 독립하였는데, 이때 보안현(保安縣)의 감무를 겸하였다. 이후 보안현은 조선 시대 초기까지 여러 차례 부령현에 합병과 분리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1416년(태종 16)에 두 현을 합하여 부안현(扶安縣)이라 하였다. 이때 지금의 부안읍성(扶安邑城)으로 옮겼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역리 산성은 통일 신라 시대~고려 시대 부령현의 치소지로 추정된다.

[위치]

역리 산성부안군 행안면 역리에 있는 고성산에 자리한다. 부안군과 김제시를 잇는 국도 제30호선을 따라 부안경찰서에 도착하면, 이곳으로부터 북서쪽 550여 m 지점에 고성산이 있다. 부안경찰서 북서쪽에 인접한 서옥(西玉)마을로 들어가서 마을을 감싸고 있는 외곽 길을 따라가면 고성산의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는 작은 연못이 조성되어 있는데, 역리 산성은 이 부근부터 시작된다.

[형태]

고성산의 7부~8부를 두르고 있는 토성으로, 평면 형태는 삼각형에 가까운 테뫼식 산성이다. 토성의 둘레는 535.6m이다.

[현황]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부안 고적조에 “고읍성은 현의 서쪽에 있다. 둘레는 500척이며 성안에는 6개의 샘이 있다[古邑城 在縣西 周五百尺 內有六泉]”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대동지지(大東地志)』 부안 성지조에는 “고읍성은 [현의] 서쪽 3리에 있다. 둘레는 1,500척이며 샘이 6개가 있다[古邑城 西三里 周一千五百尺 泉六]”, 『고적 조사 자료』에는 “토축(土築)으로서 주위 약 160간 높이 4척 원형에 가까움”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의 500척을 포백척(布帛尺)[단위 46.66㎝]으로 환산해 보면 233.3m이고, 『대동지지』의 1,500척은 699.9m이다. 『고적 조사 자료』의 160간은 1간을 1.82m로 환산하면 291m 내외이다. 『문화 유적 총람』에는 “토축으로 주위가 약 290m이며 높이는 1.2m로 원형의 흔적이 있다”라고 적혀 있다. 문헌 기록 당시의 적용된 단위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1960년대 실측된 535.6m와 근접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각이 둥근 삼각형 모양이며, 지형에 따라 토루를 협축(夾築)한 곳이 있고, 내탁(內托)하여 안쪽을 테라스상 광장을 두거나 회랑도(回廊道)를 설치한 곳도 있다. 남쪽 성벽의 경우 성벽의 내외를 함께 협축하였는데, 바깥 경사면 길이는 8m, 경사 각도는 25°이고, 안쪽 경사면 길이는 8.9m, 경사 각도는 23°, 수직 높이는 3.4m이다.

성문은 남문 터와 북문 터, 서문 터가 확인된다. 남문 터는 남벽 가운데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며 주변에 수구지가 있다. 성 안쪽으로는 저습지와 우물이 자리하고 있어 성 내부의 물을 모아 두는 집수 시설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북문 터는 성 내부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통로부의 너비는 6.8m 내외이다. 서문 터는 서벽의 가운데 부분에 위치하며, 너비는 7.4m가량이다.

[의의와 평가]

역리 산성은 조선 태종 대에 부령현보안현을 합하여 부안현의 치소성[부안읍성]으로 옮기기 전까지 통일 신라 시대~고려 시대 부령현의 치소성으로 운영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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