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667
한자 崔相煜
영어공식명칭 Choe Sanguk
이칭/별칭 노촉(路燭)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재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2년 8월 23일연표보기 - 최상욱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35년 3월 - 최상욱 광주 제1보통학교[현 서석초등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42년 8월 21일 - 최상욱 남선교통 주식회사 취직
활동 시기/일시 1943년 9월 25일 - 최상욱 투옥
추모 시기/일시 1980년 - 최상욱 대통령 표창 수여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최상욱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몰년 시기/일시 2012년 3월 13일연표보기 - 최상욱 사망
출생지 광산군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204번지
거주|이주지 부안군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학교|수학지 광주제1보통학교 -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82번길 26[서석동 14-1번지]
활동지 부안군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묘소 국립 대전 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번지]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최상욱(崔相煜)[1922~2012]은 1943년 부안군에 있는 남선교통 주식회사에서 근무하였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 대우와 창씨 개명, 신사 참배를 비판하며 조선인의 민족 정신을 강조하였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육군 형법 위반과 조언비어(造言飛語)[일본군과 관련하여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혐의]와 보안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가계]

본관은 탐진(耽津)이고 호는 노촉(路燭)이다. 아버지 최성원(崔性元)과 어머니 정남윤(丁南潤) 사이에서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최상욱은 광산군[현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1943년 부안에 있는 남선교통 주식회사에 취직하였다. 그 해 5월 9일 부령면[현 부안군 부안읍]의 요리점 환무옥에서 조선인은 조선어를 사용해야 한다며 일본의 조선어 말살 정책을 비판하였다. 5월 16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소만 국경(蘇滿國境)[당시 소련과 만주의 국경]에 배치되어 있는 군대의 사병 급식에도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차별 대우가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내선일체(內鮮一體)의 허구와 기만성을 폭로하고 항일 의식을 고취한 것이다. 또한 민족 말살 정책에 근거한 창씨개명[일본식 성명 강요]을 비판하고 조선인에게는 조선의 혼이 있다며 민족정신의 수호를 주장하였다. 5월 17일에는 일제가 강요하는 신사 참배가 우상 숭배에 불과하니 이를 거부해야 한다고 설득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당시 부안군 군농회 지도원 김병은(金炳殷)도 함께 체포되었다.

최상욱은 1943년 9월 25일 전주지방법원에서 불경죄와 육군 형법 위반, 보안법 위반 등 세 가지 죄목으로 징역 2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최상욱의 큰딸인 최백란은 “아버지는 평소에도 자신이 일제 강점기에 한 일은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겸손해 하셨다. 주위에서 독립 유공자 신청 권유가 많았으나 늦게야 독립 유공자 신청을 했으며 자신이 한 일은 지극히 당연하고 작은 일이라며 말씀을 아끼셨다.”고 회상하였다.

[묘소]

최상욱의 묘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번지]에 있는 국립 대전 현충원[애국지사 4묘역 462번]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80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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