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413
한자 扶安龜岩里支石墓群
이칭/별칭 구암리 고인돌 떼,부안 구암리 고인돌군,부안 구암리 고인돌 떼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고분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석상리 706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이동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56년 -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 이홍직이 조사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60년 -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 『독사여적(讀史餘滴)』에 보고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 사적 제103호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1년 -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 부안군에서 정비
소재지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 -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석상리 706지도보기
성격 고인돌군
양식 기반식
크기(높이,지름) 6.4m[1호 덮개돌 길이]|4.5m[1호 덮개돌 너비]|0.8m[1호 덮개돌 두께]|6.38m[2호 덮개돌 길이]|3.84m[2호 덮개돌 너비]|0.65m[2호 덮개돌 두께]|4.6m[3호 덮개돌 길이]|2.24m[3호 덮개돌 너비]|1.30m[3호 덮개돌 두께]|2.6m[4호 덮개돌 길이]|1.77m[4호 덮개돌 너비]|0.52m[4호 덮개돌 두께]|4.5m[6호 덮개돌 길이]|2.76m[6호 덮개돌 너비]|0.6m[6호 덮개돌 두께]|3.12m[7호 덮개돌 길이]|2.34m[7호 덮개돌 너비]|0.62m[7호 덮개돌 두께]|3.0m[8호 덮개돌 길이]|2.47m[8호 덮개돌 너비]|0.84m[8호 덮개돌 두께]|1.84m[9호 덮개돌 길이]|1.25m[9호 덮개돌 너비]|0.5m[9호 덮개돌 두께]|1.2m[10호 덮개돌 길이]|0.38m[10호 덮개돌 두께]
소유자 부안군
관리자 부안군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제103호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석상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개설]

지석묘(支石墓)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무덤으로서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책상처럼 세운 탁자식(卓子式)[북방식], 큰 돌을 조그만 받침돌로 고인 바둑판식[남방식], 지하에 만든 무덤방 위에 바로 뚜껑돌로 덮는 개석식 등이 있다.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扶安龜岩里支石墓群)의 ‘구암리(龜岩里)’라는 지명은 가장 규모가 큰 7호 지석묘의 모양이 거북을 닮아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의 서쪽과 남쪽에 석재 채굴이 가능한 산지가 분포하며, 남쪽에는 영은천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주변 지역에 대체로 너른 평지가 펼쳐 있어, 지석묘를 축조할 당시 사람들이 살기에 가장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위치]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부안군 하서면 석상리 706번지[외 7필지] 구암마을에 위치한다. 국도 제23호선을 따라 줄포 방향으로 가다가 상서면 사무소에서 지방도 제736호선[고인돌로]을 따라 우회전하여 가면, 상서초등학교를 지나 지방도 제705호선[내변산로]과 만나는 도화 사거리가 나온다. 도화 사거리에서 직진하여 영은천을 건너면 왼쪽으로 구암마을이 나온다. 영은천을 통과하는 다리를 지나 곧바로 좌회전하여 70m 정도 지나면 마을로 들어가는 구암길이 있다. 마을 입구 정면에 지석묘군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을 지나면 지석묘군이 분포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은 1956년에 이홍직이 조사하고, 1960년에 『독사여적(讀史餘滴)』에 보고하였다. 원래는 마을 주민 백영기(白永基)의 집 울타리 안에 13기가 있었다고 보고되었으나, 현재는 10기만 남아 있다. 그러나 부안군청의 1979년 사적지 정비를 위한 현황도 및 계획도에서는 현재 3호 지석묘와 4호 지석묘를 제외한 8기의 지석묘만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지석묘의 정확한 분포 개수 파악을 위해서는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 전체 면적에 대한 발굴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형태]

10기의 지석묘는 기반식의 형태를 보이며, 전체적인 배치 형태는 1호 지석묘~9호 지석묘는 군집을 이루고, 10호 지석묘는 군집과 떨어져 별도로 분포하고 있다. 전체 10기의 지석묘 중 건물 동남쪽에 위치한 1호 지석묘는 장축(長軸)이 정남북 방향이다. 덮개돌[上石]의 길이는 6.4m, 너비는 4.5m, 두께는 0.8m이며 8개의 고임돌[支石]이 받쳐져 있는 다지석식(多支石式)이다. 고임돌은 대략 높이 0.7m~1.0m, 너비 0.3m~0.76m의 자연 석괴로서 자라 등처럼 타원형인 뚜껑돌의 주변 밑을 따라 둘러싸여 있다. 이것은 바둑판식 지석묘가 시대를 내려오면서 덮개돌 아래에 몇 개의 주상(柱狀) 또는 판상(板狀) 고임돌을 외연을 따라 세운 것으로, 그 자체가 무덤방[石室]의 역할을 하고 있다. 1969년 당시까지 발견된 바둑판식 지석묘로는 최대 규모였다.

2호 지석묘는 1호 지석묘의 북쪽 담장을 따라 남-북[서남 20° 방향]으로 놓여 있다. 덮개돌은 길이 6.38m, 너비 3.84m, 두께 0.65m의 비교적 얇은 장방형을 이루고 있으며, 높이 0.6m 정도의 4개의 고임돌을 괴고 있다[4지석식]. 3호 지석묘는 2호 지석묘와는 반대쪽인 건물 서편에 있으며, 장축이 서남 32° 방향으로 역시 4지석식이다. 덮개돌은 길이 4.6m, 너비 2.24m, 두께 1.30m로서 길이에 비해 두께가 두껍다. 4호 지석묘는 2호 지석묘의 서남방에 있는 소형의 지석묘이다. 장축은 동서 방향으로서 덮개돌은 길이 2.6m, 너비 1.77m, 두께 0.52m의 4지석식이다.

5호 지석묘는 2호 지석묘와 나란히 그 남방에 자리한다. 6호 지석묘는 5호 지석묘의 남쪽에 있다. 장축이 동남 70° 방향으로 길이 4.5m, 너비 2.76m, 두께 0.6m의 자라 등 모양의 덮개돌을 4개의 고임돌로 받쳤다. 7호 지석묘는 6호 지석묘의 동쪽에 있다. 장축이 동남 20° 방향으로 길이 3.12m, 너비 2.34m, 두께 0.62m의 자라 등 모양의 덮개돌을 역시 4개의 고임돌이 받치고 있다. 8호 지석묘는 7호 지석묘 남쪽에 이웃해 있다. 장축이 동남 30° 방향으로 덮개돌은 길이 3.0m, 너비 2.47m, 두께 0.84m의 4지석식이다. 9호 지석묘는 7호 지석묘와 나란히 그 서편에 있다. 장축이 동남 30° 방향으로 덮개돌은 길이 1.84m, 너비 1.25m, 두께 0.5m의 소형이며, 4개의 고임돌로 괴었다.

10호 지석묘는 6호 지석묘의 동편 담장 밑에 깔려 일부분만 노출되었다. 동서 장축 방향으로 길이 1.2m, 두께 0.38m이고 너비는 알 수 없다. 하부 구조인 무덤방이나 묘역 시설 등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덮개돌 아래에서 다수의 석재 등이 확인되는 지석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차후 발굴 조사 시 하부 구조가 확인될 가능성이 있다.

[출토 유물]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아 출토 유물에 대한 정보는 알 수 없다.

[현황]

2001년 부안군에서 정비하여 민가를 없애고 잔디밭을 깔아 고인돌 공원으로 조성해 놓았으며, 관리가 잘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1963년 1월 21일 우리나라 고인돌 중 최초로 사적 제103호로 지정[지정 면적 3,322㎡]되었다.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은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는데, 이들은 대체로 자연 암석을 떼어 내어 덮개돌로 사용하였고 그 아래 고임돌을 몇 개씩 괴어 놓았다. 고임돌이 4개인 것과 8개인 것 등 두 가지가 있고 키가 큰 돌을 고임돌로 세워 놓은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는 뚜껑돌 밑에 작은 돌을 괴어 놓은 남방식 고인돌이 많은데, 부안군과 고창군 일대에는 키가 큰 북방식 고인돌이 군데군데 분포하고 있다.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 가운데 특히 덮개돌이 가장 큰 것은 길이가 6.4m, 너비가 4.5m이며, 거북 모양으로 생겼고, 고임돌 8개를 둥글게 돌려 세워 놓은 것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고임돌은 높이가 70㎝~100㎝이다. 이 밖의 다른 지석묘들은 고임돌 4개를 세워 놓은 것들이고, 뚜껑돌의 크기는 길이가 3m~4m, 너비가 2m~3m 정도 된다.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은 다른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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