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407
한자 來蘇寺蓬萊樓扁額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266-1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미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837년연표보기 - 내소사 봉래루 편액 제작[편액 봉래루(蓬萊樓)]
제작 시기/일시 1943년연표보기 - 내소사 봉래루 편액 제작[내소사만세루중건기(來蘇寺萬歲樓重建記)]
현 소장처 내소사 봉래루 -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266-1지도보기
원소재지 실상사 봉래루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163-3지도보기
성격 편액
재질 나무
크기(높이,길이,너비) 70㎝×136㎝[편액 봉래루(蓬萊樓)]|31.5㎝×115.2㎝[변산내소사영세불망기(邊山來蘇寺永世不忘記)]|26.2㎝×39.7㎝[현판 시액(詩額)]|35.2㎝×50.5㎝[근차판상운(謹次板上韻)]|35.9㎝×51.6㎝[시액(詩額)]|27㎝×90㎝[변산내소사사자암중창기(邊山來蘇寺獅子庵重創記)]|24.5㎝×51.4㎝[촉향기(囑香記)]|28.9㎝×144.7㎝[내소사친목회서(來蘇寺親睦會序)]|20.5㎝×48㎝[시액(詩額)]|21㎝×43㎝[시액(詩額)]|22㎝×37.5㎝[시액(詩額)]|23.5㎝×49.3㎝[시액(詩額)]|22㎝×33.5㎝[근차판상운(謹次板上韻)]|32.8㎝×84.7㎝[제변산소래사(題邊山蘇來寺)]|40㎝×98㎝[송덕기(頌德記)]|40㎝×181㎝[내소사만세루중건기(來蘇寺萬歲樓重建記)]|25.9㎝×61㎝[근차(謹次)]|26㎝×34㎝[내소사차운(來蘇寺次韻)]|23.5㎝×39㎝[시액(詩額)]|27.5㎝×59.8㎝[봉산친길수계(蓬山親吉修契)]|24㎝×35㎝[시액(詩額)]|30.5㎝×44.2㎝[송덕문(頌德文)]|25.7㎝×36.5㎝[근차판상운(謹次板上韻)]|26㎝×49㎝[탐승기념(探勝記念)]|23㎝×46.2㎝[근차판상운(謹次板上韻)]|22.3㎝×36.5㎝[근차(謹次)]|23.5㎝×35㎝[시액(詩額)]|25.8㎝×58.2㎝[근차내소사원운(謹次來蘇寺原韻)]|20.8㎝×39㎝[기념문(記念文)]|20.1㎝×39㎝[불탄제기념문(佛誕祭記念文)]|83㎝×278㎝[내소사중수단월방명록(來蘇寺重修檀越芳名錄)]
소유자 대한불교조계종 내소사
관리자 대한불교조계종 내소사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내소사 봉래루에 있는 31개의 편액.

[개설]

내소사(來蘇寺)는 633년(무왕 34)에 혜구 두타(惠丘頭陀)가 창건한 절로, 처음에는 소래사(蘇來寺)라 하였다가 내소사로 바꾸었다. 이름을 바꾼 까닭은 확실하지 않으며 그 시기만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내소사 일원(來蘇寺一圓)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7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내에는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扶安來蘇寺大雄寶殿)[보물 제291호]과 요사채인 설선당(設禪堂)[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25호], 보종각(寶鐘閣), 부안군 변산면실상사지(實相寺址)에서 옮겨 세운 봉래루(蓬萊樓), 고려 시대에 제작된 부안 내소사 동종(扶安來蘇寺銅鍾)[보물 제277호]과 내소사 삼층석탑(來蘇寺三層石塔)[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24호] 등이 있다.

내소사 봉래루내소사의 불이문(不二門)으로, 내소사 사천왕문(四天王門)과 대적광전(大寂光殿) 사이에 누각 형식으로 위치한다. 1414년(태종 14)에 세운 것으로 원래는 봉래루 아래로 출입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출입이 가능하다. 봉래루는 원래는 ‘만세루(萬歲樓)’였으며, 1823년(순조 23) 중건할 때까지도 ‘만세루’였는데, 1926년에 ‘봉래루’로 명칭을 바꾸었다고 한다. 봉래루는 정면 5칸에 측면 3칸 규모이며, 맞배지붕의 2층 누각 형태이다. 양쪽 측면에 풍판(風板)을 달았다. 편액(扁額)들은 봉래루 건물 내부 벽면과 천장보에 걸려 있는데 현재 31개가 있다. 편액의 제작 시기는 조선 시대~일제 강점기에 해당한다. 봉래루와 봉래루에 걸린 편액들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은 비지정 문화재이다.

[형태]

내소사 누각 건물인 봉래루에 소장되어 있는 현판은 모두 31개이며, 건물 내부 벽면과 천장보에 걸려 있다. 이들 31개의 현판은 각각 다음과 같다.

1. 편액 봉래루(蓬萊樓)[1837년, 나무, 70㎝×136㎝, 1점]

2. 변산내소사영세불망기(邊山來蘇寺永世不忘記)[나무, 31.5㎝×115.2㎝, 1점]

3. 현판 시액(詩額)[나무, 26.2㎝×39.7㎝, 1점]

4. 근차판상운(謹次板上韻)[나무, 35.2㎝×50.5㎝, 1점]

5. 시액(詩額)[나무, 35.9㎝×51.6㎝, 1점]

6. 변산내소사사자암중창기(邊山來蘇寺獅子庵重創記)[나무, 27㎝×90㎝, 1점]

7. 촉향기(囑香記)[나무, 24.5㎝×51.4㎝, 1점]

8. 내소사친목회서(來蘇寺親睦會序)[나무, 28.9㎝×144.7㎝, 1점]

9. 시액(詩額)[나무, 20.5㎝×48㎝, 1점]

10. 시액(詩額)[나무, 21㎝×43㎝, 1점]

11. 시액(詩額)[나무, 22㎝×37.5㎝, 1점]

12. 시액(詩額)[나무, 23.5㎝×49.3㎝, 1점]

13. 근차판상운(謹次板上韻)[나무, 22㎝×33.5㎝, 1점]

14. 제변산소래사(題邊山蘇來寺)[나무, 32.8㎝×84.7㎝, 1점]

15. 송덕기(頌德記)[나무, 40㎝×98㎝, 1점]

16. 내소사만세루중건기(來蘇寺萬歲樓重建記)[1943년, 나무, 40㎝×181㎝, 1점]

17. 근차(謹次)[1942년, 나무, 25.9㎝×61㎝, 1점]

18. 내소사차운(來蘇寺次韻)[조선 후기, 나무, 26㎝×34㎝, 1점]

19. 시액(詩額)[1939년, 나무, 23.5㎝×39㎝, 1점]

20. 봉산친길수계(蓬山親吉修契)[나무, 27.5㎝×59.8㎝, 1점]

21. 시액(詩額)[나무, 24㎝×35㎝, 1점]

22. 송덕문(頌德文)[나무, 30.5㎝×44.2㎝, 1점]

23. 근차판상운(謹次板上韻)[나무, 25.7㎝×36.5㎝, 1점]

24. 탐승기념(探勝記念)[나무, 26㎝×49㎝, 1점]

25. 근차판상운(謹次板上韻)[나무, 23㎝×46.2㎝, 1점]

26. 근차(謹次)[나무, 22.3㎝×36.5㎝, 1점]

27. 시액(詩額)[나무, 23.5㎝×35㎝, 1점]

28. 근차내소사원운(謹次來蘇寺原韻)[나무, 25.8㎝×58.2㎝, 1점]

29. 기념문(記念文)[나무, 20.8㎝×39㎝, 1점]

30. 불탄제기념문(佛誕祭記念文)[나무, 20.1㎝×39㎝, 1점]

31. 내소사중수단월방명록(來蘇寺重修檀越芳名錄)[나무, 83㎝×278㎝, 1점]

[특징]

내소사는 현재 내방객들의 편의를 위해 봉래루를 휴식 공간으로 개방하고 있다. 봉래루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이러한 규칙은 봉래루의 쾌적한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하여 결과적으로 봉래루에 소장 중인 문화재를 보존하는 데에도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 봉래루 편액 1점과 현판 30점의 보존 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사찰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비지정 문화재는 아마도 현판들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찰에 편액이나 현판이 사용된 시기는 불교가 전래된 삼국 시대일 것으로 추정되므로,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편액이나 현판이 문화재로 지정된 예는 거의 없다. 내소사의 특정 시기 역사를 알려 주고 있는 봉래루 소재 31점의 현판은 문화재로 지정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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