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403
한자 開巖寺靈山會掛佛幀-草本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개암로 248[감교리 71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미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749년연표보기 - 「개암사 영산회괘불탱」 및 초본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1997년 8월 8일연표보기 - 「개암사 영산회괘불탱」 및 초본 보물 제1269호 지정
현 소장처 개암사[「개암사 영산회괘불탱」]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개암로 248[감교리 714]지도보기
현 소장처 개암사[초본]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지산리 583]
원소재지 개암사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개암로 248[감교리 714]
성격 탱화
작가 의겸[승려 화가]
소유자 개암사
관리자 개암사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제1269호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개암사에 소장되어 있는 1749년에 제작된 영산회괘불탱과 그 초본.

[개설]

괘불(掛佛)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할 때 법당 안이 아니라 바깥에 걸어 놓고 예불을 드리는 대형의 탱화이다. 개암사의 괘불은 화사승(畵師僧) 의겸(義謙)이 그린 영산회상도로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제자들을 그린 불화인데 조성 연대와 불모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을 뿐만이 아니라 괘불화의 제작 과정과 필치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초본[밑그림]이 함께 남아 있어 그 중요성을 더한다. 의겸은 숙종조부터 영조조[1710경~1760년경]까지 지리산을 중심으로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에서 활동한 화사승으로, 전라남도에 있는 송광사, 실상사, 천은사, 경상남도에 있는 운흥사, 청곡사 등의 사찰에 영산회상도, 팔상도, 나한도, 감로왕도, 괘불 등 불화의 전반에 걸친 다양한 작품을 남기고 있다. 의겸이 그린 초본은 여러 사찰에서 제작되어 유사한 형식을 이루고 있다. 의겸은 개암사에 보관되어 있던 초본을 사용하여 청곡사 괘불, 운흥사 괘불, 다보사 괘불, 개암사 괘불을 조성하였다. 「개암사 영산회괘불탱」 및 초본(開巖寺靈山會掛佛幀-草本)은 1997년 8월 8일 보물 제1269호로 지정되었다. 2020년 현재 「개암사 영산회괘불탱」개암사에 보관되어 있고 초본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형태 및 구성]

「개암사 영산회괘불탱」은 길이 14m, 폭 9m로 입상(立像)의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입상으로 묘사하고, 그 뒤쪽에는 다보여래, 아미타여래, 관음보살, 세지보살을 그렸다. 중앙에 자리한 석가모니는 우견편단(右肩偏袒)[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방법]하였고 수인(手印)은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가슴 위로 들어 올리고 있다. 가슴 위쪽에는 만(卍)자를 넣었으며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표현되었는데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 부분에서 다섯 줄기의 흰색 두광이 뿜어지고 있다. 또한 두광 내에 2구의 좌불이 배치되었는데 좌우에 각 1구씩 대칭적으로 배치되었다. 관음보살은 백의와 화불로 표현하였다. 각 상들의 얼굴 형태와 어깨는 각이 지게 표현하여 경직되어 보이며, 눈썹은 처지게 처리했고 선은 매우 정밀하고 세련되어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채색은 주로 붉은색과 녹색에 금색을 사용하였고 군청색을 넣어 색채 대비도 보여주고 있다. 1749년(영조 25)에 화사승 의겸이 참여한 그림으로 화면을 꽉 채운 구도와 경직된 형태, 강렬한 색채 등으로 18세기 중엽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제작 연대도 확실하여 우리나라 불교 회화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개암사 영산회괘불탱」의 밑그림도 남아 있다. 이러한 밑그림은 현재 밝혀진 유일한 것으로 당시 괘불화의 제작 과정과 필치 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특징]

「개암사 영산회괘불탱」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 앞쪽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뒤쪽 좌우에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및 다보여래, 아미타여래 등이 모두 석가모니를 향하여 시립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은 우견편단을 하였는데 가슴 위쪽에 만(卍)자가 표현되었고 부처님의 두광에는 좌우 양쪽에 대칭적으로 화불 1구씩을 배치한 점이 특징적이며, 이러한 괘불탱의 초본이 함께 남아 있는 점은 괘불탱의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개암사 영산회괘불탱」 및 초본 은 조성 시기와 조성자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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