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339
한자 靑銅器時代
영어공식명칭 Bronze Age
이칭/별칭 무문 토기 시대,족장 사회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시대 선사/청동기 시대
집필자 이종철

[정의]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서 청동기로 도구를 만들고 민무늬 토기를 사용하던 시대.

[개설]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대는 토기와 청동기에 대한 문화적·시대적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에 무문 토기 문화와 청동기 문화로 대표된다. 청동기 시대는 조기,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여기에는 무문 토기의 연구 성과가 반영되어 있다. 조기는 미사리 유형(渼沙里類型), 전기는 가락동 유형(可樂洞類型)·역삼동 유형(驛三洞類型)·흔암리 유형(欣岩里類型), 중기는 송국리 유형(松菊里類型)·천전리 유형(泉田里類型)·검단리 유형(檢丹里類型), 후기는 수석리 유형(水石里類型)이 중심을 이룬다. 이와 같은 시기 구분에 청동기는 전기와 중기에 요령식 동검 문화(遼寜式銅劍文化)가, 후기에 한국식 동검 문화(韓國式銅劍文化)가 각각 자리한다. 요령식 동검 문화는 비파(琵琶) 형태의 동검을 표지로 하는 문화권으로서 요령과 만주, 한반도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한국식 동검 문화는 세형동검(細形銅劍)으로도 불리는 동검을 표지로 하며 한반도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한국식 동검 문화가 유행하던 기원전 3세기~2세기 대에는 한반도에 철기 문화가 출현하면서 철기 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대는 신석기 시대가 끝나는 기원전 2000년 무렵 또는 미사리 유형이 등장하는 기원전 15세기 대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보며, 철기 문화가 도래하기 직전인 기원전 4세기 대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한다.

[부안의 고인돌군]

부안 지역에서 청동기 시대의 존재는 가장 먼저 고인돌에서 찾을 수 있으며, 2020년 12월 현재까지 64곳에서 확인되었다. 13개 읍면 가운데 상서면이 32곳으로 가장 많고, 보안면이 17곳으로 두 번째 밀집 분포 지역으로 집계되었다. 다음이 행안면하서면이지만 대부분 5~1곳에 불과하다. 이러한 분포는 변산반도 산악 지대 끝 동쪽 편과 평야 지대가 만나는 곳으로 국도 제23호선의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이 가운데 하서면 일대의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사적 제103호]은 대표적인 유적이다.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은 13기의 기반식 고인돌 떼로서 높은 밀집도를 보인다. 여기에서 400여 m 떨어진 곳에는 석상리 반암마을 고인돌군이 있는데, 구암리와 같은 성격으로 이해된다. 상서면에서는 감교리, 지석리, 용서리, 우덕리, 회시리 등에 고인돌이 분포하고, 보안면에서는 만화동, 유천리, 우동리, 유점리, 남포리의 고인돌군이 알려져 있다. 특히 부안 지역에서 보안면의 고인돌군 유적 수는 두 번째이나 가장 많은 고인돌이 자리하고 있다. 부안군의 고인돌은 기반식과 개석식이 함께 분포하는 양상이지만, 2020년 현재까지 정식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성격과 축조 시기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부안의 청동기 시대 집자리]

부안군에서 확인되는 청동기 시대 전기 단계의 주거 유적은 2020년 현재까지 두 곳에서 확인되었다. 한 곳은 행안면 역리 유적이고, 다른 한 곳은 동진면 내기리 유적이다. 유적에서는 장방형 집자리가 조사되었으며, 내부에서는 가락동 유형의 무문 토기가 출토되었다.

청동기 시대 중기는 우리나라 전역에 송국리 유형이 보편화되는 시기로 송국리형 문화 단계에 해당한다. 연구자마다 견해 차이는 있지만, 청동기 시대 중기는 기원전 9세기 대~기원전 6세기에 해당하며, 송국리형 문화는 기원전 9세기 대~기원 전후까지 지속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청동기 시대 중기에 해당하는 송국리형 문화는 줄포면 신리, 행안면 역리, 보안면 하입석리 등에서 확인되는데, 송국리형 집자리가 발굴 조사된 유적들이다. 송국리형 집자리는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조사된 집자리에서 유래된 것으로, 원형과 방형의 평면 형태를 이루고 바닥 중앙에 돼지코 모양처럼 타원형 구덩이와 중심 기둥을 설치하는 집자리를 말한다. 2020년 현재까지 대규모의 송국리형 취락은 조사되지 않았지만, 저평한 구릉과 평지 또는 하천 변의 충적 대지에 5~10기 내외의 중·소 규모 취락이 산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의 송국리형 취락은 고인돌 집단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였는데, 돌널무덤[石棺墓]과 독무덤[甕棺墓]이 함께 축조되는 경향을 보인다.

[부안의 청동기 시대 조개더미]

청동기 시대의 문화상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유적은 조개더미이다. 부안군에서 발견된 조개더미 가운데 청동기 시대의 것은 변산면 격하 조개더미가 대표적이다. 2003년 발굴 조사에서 13기의 노지, 가락동 유형의 무문 토기, 어망추 등이 출토되었다. 가락동 유형의 무문 토기는 구연부가 이중(二重)으로 겹을 이루고 짧은 빗금이 새겨진 토기로 청동기 시대 전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부안군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외에 계화면 계화리 살금계상리, 보안면 신복리의 조개더미에서 무문 토기가 확인되었다. 당시 청동기 시대 주민들의 생계 체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의의와 평가]

부안군에서 확인된 유적들을 통해 청동기 시대의 문화상과 생활상이 어느 정도 밝혀졌지만, 청동기 시대 연구의 심도를 더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인돌과 조개더미 유적의 발굴 조사가 가장 시급하며, 송국리형 문화와의 관계성을 밀도 있게 살펴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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