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676
한자 申永彩
영어공식명칭 Sin Yeongchae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창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5년연표보기 - 신영채 출생
출생지 신영채 출생지 - 전라북도 부안군
성격 판소리 명창
성별
대표 경력 조선음악단 단원

[정의]

일제 강점기 부안 출신의 판소리 명창.

[활동 사항]

신영채(申永彩)[1915~?]는 1915년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태어났다. 15세부터 엿장수를 시작하였는데, 또랑광대[판소리를 잘 못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에게 배운 소리에 중중모리장단으로 가위 소리를 내며, ‘엿들 사리야 엿들 사/ 어디를 가면 그저를 줄까/ 허랑방탕에 막 파는 엿이야’라는 가사를 붙여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신영채의 성음이 타고난 천구성(天口聲)으로 1933년 전도성(全道成)[1864~?]이 신영채의 소리를 듣고 제자로 받아들였다. 이후 신영채는 엿장수를 그만두고, 전도성의 문하에서 5년간 판소리를 배웠다. 1938년 전도성의 소개로 동일가극단에 입단하였다. 1940년 조선음악단의 일원으로 이동백(李東伯), 박녹주(朴綠珠), 조몽실(曺夢實) 등과 활동하였다. 대동가극단에서도 이화중선(李花仲仙), 이중선(李中仙), 강남중(姜南中) 등과 함께 활동하였는데, 정확한 활동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1950년 이후로 행방이 묘연하여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 수 없다.

[저술 및 작품]

신영채는 「흥보가」와 「적벽가(赤壁歌)」를 잘했는데, 아니리와 붙임새가 능숙했다. 특히 「적벽가」 중 화용도(華容道) 장면[적벽전에서 관우가 조조를 잡지 않고 길을 터 주어 조조가 화용도까지 달아나는 부분]을 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영채는 전라북도 무형 문화재 제9-2호 판소리 고법 예능 보유자 주봉신(朱鳳信)[1934~2017]에게 처음 판소리를 가르친 사람으로, 주봉신은 이때 신영채에게 「적벽가」를 배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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