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1261
한자 洪吉童傳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영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69년 - 허균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608년 무렵연표보기 - 「홍길동전」 저술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18년 - 허균 사망
배경 지역 정사암(靜思庵)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우반동지도보기
성격 비판적|현실적
작가 허균

[정의]

조선 중기에 허균이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에 있는 정사암에서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 한글 소설.

[개설]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許筠)[1569~1618]은 조선 시대 형조 참의,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인이다. 본관은 양천(陽川)으로,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학산(鶴山)·성소(惺所)·백월거사(白月居士)이다. 아버지는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서 학자와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허엽(許曄)이고, 어머니는 강릉 김씨로 예조 판서 광철(光轍)의 딸이다. 임진왜란 직전 일본 통신사의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허성(許筬)이 이복형이며,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허봉(許篈)과 허난설헌(許蘭雪軒)과는 형제이다. 1618년(광해군 10) 8월에 역적모의의 혐의로 저잣거리에서 능지처참형에 처해졌다.

허균은 죽기 전에 그의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를 자신이 편찬했는데 그 속에는 「관론(官論)」, 「정론(政論)」, 「병론(兵論)」, 「유재론(遺才論)」 등 문학사적으로나 역사적·사상적으로 주목할 만한 글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또한 허균이 25살 때에 쓴 시 평론집 『학산초담(鶴山樵談)』이나 문집 『성소부부고』에 실려 있는 「성수시화(惺叟詩話)」 등에 시 비평 안목이 잘 드러나고 있으며, 시선집 『국조시산(國朝詩刪)』을 통해 그의 뛰어난 감식안도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을 지은 작가로 인정되고 있다.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라는 것은 택당(澤堂) 이식(李植)[1584~1647]의 『택당집(澤堂集)』 별집(別集) 권15 「산록(散錄)」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데 『택당집』의 기록은 이식 사후 교정·편찬되는 과정에서 수정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 허균이 처형될 때 죄목에 이 작품을 지었다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 아닐 것이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엄처사전(嚴處士傳)」,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 「장산인전(張山人傳)」, 「남궁선생전(南宮先生傳)」, 「장생전(蔣生傳)」 등과 같은 허균의 한문 소설을 비추어 볼 때, 「홍길동전」 역시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등용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것과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 또한 「홍길동전」은 백성들을 수탈하는 가혹한 수령들을 응징하는 내용이 확대되어 있는데, 이는 허균 사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유재론」이나 「호민론(豪民論)」 등에도 잘 드러나 있다. 결국 이식의 기록을 부인할 수 있는 실증 자료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홍길동전」의 작가는 허균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구성]

「홍길동전」의 전체 구성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구조를 지닌다. 발단에서는 홍길동이 홍 판서의 서자로 태어나 적서 차별을 받는 상황을 그리고, 전개에서는 신변의 위험을 느낀 홍길동이 적서 차별에 반항하여 집을 떠난다. 위기에서는 도적의 무리인 활빈당의 우두머리가 되어 빈민을 구제하고, 절정 단계에서는 온 나라에서 홍길동을 잡으려고 하자 홍길동이 율도국으로 떠난다. 마지막 결말에서는 율도국이라는 이상 국가를 세우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주인공 홍길동은 조선조 세종 때 홍 판서의 시비인 춘섬의 소생으로 태어난 서자이다. 홍 판서가 용꿈을 꾸어 춘섬과 관계해서 낳은 아들이 길동이다. 길동은 어려서부터 도술을 익히고 장차 훌륭한 인물이 될 기상을 보였으나 서자인 신분 탓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즉 호부호형(呼父呼兄)을 못하는 한을 품는다. 게다가 가족들은 길동의 비범한 재주를 한편으로는 장래에 화근이 될까 두려워하고, 한편으로는 시기하기도 하여 자객을 보내 길동을 죽이려고까지 한다.

길동은 자신의 도술로 위기를 벗어나고, 집을 떠나 도적의 소굴에 들어가 도적의 우두머리가 되어 해인사 보물을 탈취한다. 그 뒤에 자신의 무리를 ‘활빈당’이라 자처하며 기이한 계책과 도술로 팔도 수령들이 불의로 축적한 재물을 탈취한다. 길동은 공공연히 자신들이 도적질할 행적을 밝히는데 모두 같은 날 같은 때였다. 함경도 감사가 길동을 잡으려고 했지만 잡지 못하고 팔도에서 다 같이 장계를 올려 길동을 잡으려고 한다. 우포장 이흡이 길동을 잡으러 나섰지만 역시 우롱만 당하고 만다. 이에 국왕이 길동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잡혀 온 길동이 300명이나 되었다. 둔갑술에 능한 길동을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길동은 자신을 병조 판서에 임명해 주면 스스로 잡히겠다고 하며 스스로 잡혀 결박되지만 곧 철삭을 끊고 사라져 버린다. 조정에서는 길동에게 병조 판서를 제수하고 길동의 아버지 홍 판서와 길동의 형 홍인형을 시켜 길동을 회유하도록 한다. 길동은 서자의 신분 때문에 관직을 제수받을 수 없었던 것이 평생의 한이었는데, 이것을 풀어 준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고 공중으로 사라진다. 그 후 길동은 왕에게 하직하고 부하를 데리고 조선을 떠나 남경으로 가다가 산수가 아름다운 율도국을 발견한다. 길동은 요괴를 퇴치하고 율도국의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린다.

[특징]

「홍길동전」은 문제의식이 강한 사회 소설적 특징을 지닌다. 적서 차별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지배 이념과 지배 질서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신분적 불평등은 마땅히 개혁되어야 한다는 내포적 주제 의식을 표출한다는 점에서 진보적인 의식을 드러내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홍길동전」은 문학사적으로 국문 소설의 효시로 평가된다. 서사적 측면에서 「홍길동전」은 ‘영웅의 일대기’를 차용하고 있는데, 고전 영웅 소설 대다수가 보수적이고 이념적인 주제를 드러내는 것과 달리 「홍길동전」은 적서 차별이나 탐관오리에 대한 저항 정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차적인 의의를 찾는다. 이와 함께 지역 문화적 차원에서 「홍길동전」의 의의를 찾는다면, 「홍길동전」변산의 지형과 당시 변산의 사회상을 유추해 볼 수 있게 해 주는 자료로서도 참고할 만하다.

허균은 1608년 무렵 관직에서 쫓겨나 부안으로 내려와 변산반도 내에 있는 정사암(靜思庵)에서 생활한다. 「홍길동전」을 집필한 것도 이곳 정사암으로 보이는데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도적들’이나 ‘율도국’의 실체가 부안 지역을 모델로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로 부안의 변산은 접근하기 어려운 지형적 특징 때문에 공권력을 피해야 하는 도적들의 소굴이 되었고, 그들을 토벌하기 어렵다는 것이 실록에 등장할 정도로 변산 도적은 서울에까지 이미 알려져 있었다. 홍길동이 ‘도적들의 우두머리’가 된다는 화소는 변산 지역의 설화 「긴다리 군관 전설」, 「변산의 군도와 허생원 이야기」 등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내용이다. 허균은 변산 지역에서 생활하면서 먹고살 길이 없어 유랑하다가 도적이 된 당시의 변산 도둑들에 대한 생활상을 직접 듣고 이것을 소설을 통해 우회적으로 녹여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홍길동전」에서 ‘산에 도적이 없는[山無盜賊]’ 사회를 ‘율도국’이라는 이상 사회로 그리고 있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한편, 「홍길동전」에 드러난 이상 국가 ‘율도국’이 부안군 ‘위도’에 비정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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