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벌금 당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1122
한자 鎭里筏金堂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승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2005년 전후 - 진리 벌금 당제가 중단되었다고 함
의례 장소 당집 -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진리 벌금마을지도보기
성격 민간 신앙|마을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 초이튿날
신당/신체 당집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진리 벌금마을에서 마을의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벌금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초이튿날 밤에 산제를 지내고, 초사흗날 오전에 당에 올라가 당제를 지냈다. 벌금마을의 당은 진리의 당과 같다. 벌금마을은 본래 진리에 속해 있었으나 동네 규모가 커져서 진리에서 분동되었다. 분동된 벌금마을에서는 진리의 당을 그대로 신당으로 삼고, 진리 당제와 당제 날짜를 달리하여 당제를 따로 지내게 되었다.

[연원 및 변천]

벌금은 예부터 소금을 생산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벌금’이라는 마을 이름도 소금벌에서 유래한 것으로 ‘벌끔’ 또는 ‘벌구미’라고도 불렀다. 지명의 ‘금’ 또는 ‘구미’는 활 모양으로 안으로 쑥 들어간 해안 지형을 의미한다.

벌금마을진리에서 분동된 이후 당제는 진리와 따로 지냈지만 신당은 진리의 당을 공유하였다. 진리에서 당제를 정월 초이튿날 지내므로, 진리에서 분동된 벌금마을에서는 진리와 당제 날짜가 겹치지 않도록 그 이튿날인 초사흗날에 당제를 지냈다.

[신당/신체의 형태]

벌금마을진리 중간 정도에 위치한 야트막한 산중턱 우거진 숲속에 단칸 기와집으로 된 당집이 있다. 당집 주위에는 돌담이 둘러쳐져 있다. 주민들은 이 당집을 ‘원당’이라고 부른다. 현재의 당집은 2006년에 개수하였다. 예전 당집에는 용왕신을 주신격으로 하여 칠성, 산신, 오방신장, 대신 할머니, 장군 등 6서낭을 모셨다고 하나 현재 당집에는 서낭이 더 추가되어 11위의 서낭신이 좌정해 있다.

[절차]

1. 산제

섣달 20일 무렵에 마을 회의를 열어 부정이 없는 사람으로 제관 두 명을 뽑고, 제의 비용도 집집마다 갹출한다. 뽑힌 제관은 육지로 나가서 장을 보아다가 제물을 직접 준비한다.

초이튿날 밤에 제관 두 명이 마을 뒷산에 올라가 산제 터에 제물을 진설하고 제를 지낸다. 제물은 돼지머리, 메, 나물, 삼색실과이며, 제를 지낼 때는 부정이 생기지 않도록 제관들은 눈짓과 손짓으로만 의사소통을 하며 일절 말을 하지 않는다. 산제를 엄격히 지냈던 시절에는 산제를 지내는 동안 임산부들이 마을 밖으로 피신을 해야 했다. 산제는 이튿날인 초사흗날 새벽까지 지낸다.

2. 당굿

초사흗날 오전에 마을 사람들이 마을 회관에 모여 마을 뒤쪽 야산 중턱 부근에 있는 당집으로 올라가 원당제를 지낸다. 위도에 무녀가 살았을 때는 위도의 다른 마을처럼 벌금마을에서도 무당을 불러 원당에서 굿을 하였다. 원당굿을 할 때 마을 주민 중 뱃사람들은 뱃기를 들고 당으로 가서 한 해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였다. 무녀가 뱃기를 가져온 뱃사람들을 상대로 쌀 점을 쳐주었는데, 쌀알의 개수가 짝수로 나오면 그 해 고기를 많이 잡고 운수가 좋다고 한다. 그래서 뱃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당에 올라가 쌀 점을 보려고 하였다. 당굿 후에는 마을 어귀의 장승에서 간단하게 장승제도 지냈다. 무녀의 원당굿과 장승제는 단절된 지 오래되었다.

[현황]

제보자들의 기억에 차이가 있지만 대략 2005년 전후로 당제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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