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1024
한자 衣生活
영어공식명칭 Clothing Life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진명숙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지역의 주민들이 입어 왔던 의복과 의복 관련 생활.

[개설]

한국인의 의생활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 신분 사회였던 조선조(朝鮮朝)까지 의복은 왕족, 양반, 서민에 따라 분명하게 구별되었다. 서양 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하던 19세기 말을 전후하여 한국 복식 문화는 한복과 양복의 이중 구조가 나타났고, 산업화 이후 전통 한복은 활동하기 편리한 양복으로 대체되었다. 양복은 한국인의 일상복으로 모든 계층에 자연스럽게 확산되었고, 한복은 통과 의례나 중요한 의식 때에 입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1960년대 한 외국인이 찍은 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현 변산면]의 주민 사진을 통해 일상의 노동이나 작업 때에도 한복을 즐겨 입는 주민들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잠업 및 의복 관련 산업]

전라북도 부안은 오랜 기간 누에를 쳐 생사를 공급하는 잠업을 영위해 온 지역으로 유명하다. 잠업은 뽕나무를 재배해 누에를 치는 사업으로서 양잠업이라고 한다. 누에를 쳐서 명주실과 비단의 원료인 생사(生絲)를 생산하는 사업을 제사업(製絲業)이라고 하며, 제사업은 양잠업과 분리할 수 없는 관계여서 양잠업과 제사업을 합해 잠사업(蠶絲業)이라고 칭하였다.

누에를 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뽕나무 재배가 중요한데, 예로부터 전라북도 부안의 바닷바람을 맞히며 재배한 뽕나무는 그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였다. 1975년 전라북도 부안의 양잠 농가는 이전의 4배인 5,236호로 급증했고, 상전 면적도 513.3㏊로 급증했으나, 석유 파동의 여파로 1980년대에는 반으로 줄어들었다. 상전·산견량은 산간·야산 지역이 평야 지역보다 월등히 많았다.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유유동은 오랜 기간 양잠업을 유지해 온 마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뽕나무로 누에를 쳐 생사를 생산하는 산견 농가는 사라지고, 대신 오디와 오디 관련 가공 식품 생산의 보고 역할을 하기 위한 뽕나무 재배가 새롭게 각광받게 되었다. 이와 함께 2010년 기준으로, 전라북도 부안 지역의 2차 산업 중 ‘의복, 의복 액세서리 및 모피 제조업’ 관련 사업체 수 및 종사자 수가 13개 업체 18명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양잠업이 활발했던 과거와는 달리 전라북도 부안 지역의 의복 관련 제조업체가 매우 영세하게 운영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상복과 작업복]

브라이언 배리(Brian Barry)가 찍은 1960년대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 사진들을 보면 당시 부안 사람들이 입던 의복의 변화상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1968년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지서리에 있던 조각선의 집에서 일상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면, 할머니는 여름 삼베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있고, 아이들은 오늘날과 별반 다름없는 일상복을 입고 있다. 윤유동 노리목 백사장의 비탈에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자세를 취하고 찍은 사진을 보면, 아이들은 색색의 모직 옷이나 합성 섬유 옷을 입고 있는 반면, 할아버지 2명은 한복을 입고 있다. 그러나 이 한복은 외출복이 아닌 허름한 일상복이다.

집 안팎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담은 사진을 보면, 대개 몸뻬라 불리는 헐렁한 바지와 편한 면옷 종류의 일상복을 입고 있다. 간혹 한복 형태의 일상복을 입고 일하는 여성을 담은 사진도 있다. 새참을 내오거나, 나락을 떨거나, 바지락을 잡는 여성 중 한복 차림의 옷을 입고 일하는 여성의 모습이 종종 발견된다. 봄날 논에서 수차로 물대기하는 청년의 옷은 반팔 면 메리야스와 반바지 차림이다.

[외출복과 의례복]

1960년대 전라북도 부안군 주민의 외출복은 세대에 따라 다른 특성을 보인다. 어른들은 여전히 한복을 즐겨 입고 있다. 원마포 신작로에서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할머니의 옷차림은 한복이다. 다만 저고리 고름이 없는 대신 옥 브로치로 웃옷 앞섶을 여미었다. 1968년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지서리 김초례 할머니 회갑 잔칫날의 조기섭·김초례 내외는 고운 한복을 입고 있다. 두 사람 다 두루마기까지 갖춰 입었다. 그러나 아들들은 모두 양복을 입고, 손자·손녀들은 단정한 서양 옷차림을 하고 있다. 한복을 입은 손녀의 모습도 보인다.

1969년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채석강(採石江)으로 나들이를 간 여성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한복을 입고 있다. 둥그렇게 돌며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 속에 한복과 춤이 무척 잘 어울린다. 밭을 풍경으로 찍은 사진에서는 한복을 입은 젊은 여성의 모습도 눈에 띤다.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한복으로 갈아입은 것으로 보인다.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까만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수도 적지 않아 당시 교복의 일상화도 엿볼 수 있다. 1972년 유불선합일갱정유도(儒佛仙合一更定儒道)를 내세우던 일심교(一心敎) 신도들의 남녀 옷차림은 전통적인 한복 차림이다. 남성들은 상투를 틀고 갓과 도포까지 착용한 모습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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