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689
한자 曺金禮
영어공식명칭 Jo Geumrye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성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7년연표보기 - 조금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85년 2월 1일연표보기 - 조금례 위도 띠뱃놀이 예능 보유자 지정
몰년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조금례 사망
활동 시기/일시 1995년 5월 24일연표보기 - 조금례 위도 띠뱃놀이 예능 보유자 지정 해제
출생지 조금례 출생지 - 전라북도 김제시
활동지 조금례 활동지 -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지도보기
성격 예능 보유자|세습 무당
성별

[정의]

부안에서 활동한 세습 무당이자 위도 띠뱃놀이 예능 보유자.

[개설]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대리 마을에서는 위도 띠뱃놀이가 전승되고 있다. 본래 정월 초사흗날 ‘띠뱃굿’으로 전승되던 대리 마을 당제가 1978년에 개최된 전국 민속 예술 경연 대회에 참가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한 이후, 1985년에 국가 무형 문화재 제82-3호 위도 띠뱃놀이로 지정되었다. 대리 마을 민속은 세습 무당이 주관하는 무당굿 성격의 전승 의례이다. 세습 무당을 전라도 지역에서는 ‘당골’이라고 부른다. 조금례 당골은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부안군 위도면 진리 마을로 시집오면서, 대리 마을을 비롯하여 위도면의 각 마을마다 무의식을 담당하는 무녀가 되었다.

[활동 사항]

혼인으로 위도(蝟島)에 입도한 조금례(曺金禮)[1917~1995]는 시할머니인 최명[1857년생]에게 위도굿을 배웠다. 최명은 남편인 신태원과 함께 위도로 입도하여 ‘위도 당골’이 되었다. 최명의 딸은 별호가 ‘대판너매’[대판이네 엄마]로 이웃 마을인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치도리로 혼인하여 그 마을 당골이 되었다. 대리 마을 당골은 최명의 며느리인 전일녀[1895년생]로 계승되었다가 위도의 마지막 세습 무당인 조금례로 이어지는데, 조금례는 최명의 손자인 신만준의 부인이자 전일녀의 며느리가 된다. 위도의 각 마을에서 무의식을 담당하는 세습 무당은 이렇듯 신씨 댁으로 시집오는 며느리를 통해 고부 전승되었다. 조금례가 17세 때부터 시할머니인 최명에게 굿을 배웠는데, 시할머니의 학습이 매우 엄격하여 “부엌의 나무청에다 밀어 놓고 물을 뿌려 가면서 가르치고, 장구채로 발목의 복상씨만 골라 때려가면서 가르쳤다.”고 한다.

조금례는 1978년 강원도 춘천에서 개최된 제19회 전국 민속 경연 대회에 무당으로 참여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85년 국가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조금례의 굿 사설은 하효길의 『위도의 민속』[국립민속박물관, 1984]에 녹취본으로 기록되어 전승되고 있다. 위도 띠뱃놀이에서 연행되는 조금례의 굿거리는 성주굿-산신굿-손님굿-지신굿-서낭굿-깃굿-문지기굿으로 전개된다. 1995년 조금례가 사망함에 따라 1995년 5월 24일 위도 띠뱃놀이 예능 보유자에서 해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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