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563
한자 金海金氏
영어공식명칭 Gimhae Gimssi|Gimhae Gim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원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김해 - 경상남도 김해시
입향지 김해 김씨 입향지 - 전라북도 부안군
세거|집성지 김해 김씨 세거지 - 전라북도 부안군
성씨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시조]|김유신(金庾信)[중시조]|김관(金管)[중조]
입향 시조 김행원(金行元)|김검록(金儉祿)|김의현(金義鉉)|김처대(金處大)|김인열(金仁烈)|김제환(金濟煥)|김상표(金相杓)|김태현(金兌鉉)|김산(金珊)|김만창(金萬昌)|김목(金睦)|김영국(金永國)|김윤오(金允五)|김재환(金再煥)

[정의]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김행원·김검록·김의현·김처대·김인열·김제환·김상표·김태현·김산·김만창·김목·김영국·김윤오·김재환 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부안군의 세거 성씨.

[연원]

우리나라 성씨 중 그 수가 가장 많은 김해 김씨(金海金氏)의 시조는 가락국(駕洛國)의 김수로왕(金首露王)이다. 중시조는 김수로왕의 11세손인 김유신(金庾信)이다. 김해 김씨는 세 파로 나누어지는데 김유신의 후손인 김목경(金牧卿)을 중시조로 하는 경파(京派)와 그 아우 김익경(金益卿)을 중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金管)을 중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이다. 김관의 5세손 모암(慕菴) 김극일(金克一), 그 손자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김일손의 조카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 세 사람을 삼현(三賢)이라 한다.

김극일은 길재(吉再)의 문인으로 사림에서 명망이 높았다. 김일손(金馹孫)은 점필재(佔畢齎)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춘추관(春秋館) 사관으로 있을 때 『성종실록(成宗實錄)』을 편찬하면서 스승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넣었다. 이를 두고 유자광(柳子光), 이극돈(李克墩)이 이는 세조(世祖)가 단종(端宗)을 죽인 것을 비유한 글이라고 연산군(燕山君)에게 모함하여 많은 선비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는데 이것이 1498년(연산군 4)의 무오사화(戊午史禍)이다. 이때 부안 출신 성중엄(成重淹)도 사관으로 있다가 이 사건에 연루되어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하였다.

삼족당 김대유는 직제학 김준손(金駿孫)의 아들로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의 문인이었다. 현량과(賢良科)에 급제하여 칠원 현감(漆原縣監)을 지냈다가 기묘사화(己卯士禍) 뒤에 고향인 청도에 은거하였다. ‘벼슬도 수령도 지냈으니 족하고, 나이도 예순을 넘었으니 족하고, 조석으로 고기와 술을 먹을 수 있으니 족하다’ 하여 스스로 호를 ‘삼족당(三足堂)’이라고 지었다.

[입향 경위]

부안의 김해 김씨는 대부분 삼현파와 경파에 속하며, 부안군 각 지역에 고루 흩어져서 살고 있다.

행안면 종산(鍾山)에 김일손의 후손인 효자 김행원(金行元)이 들어와 그 자손들이 번성하였고, 청계리에도 김일손의 후손인 김재헌이 들어와 그 자손들이 살고 있다.

상서면 장동리에는 절효공 극일(克一)의 후손인 김검록(金儉祿)이 남원에서 옮겨 왔는데, 김검록은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김검록의 아들 김삼철(金三哲)과 손자 김만창(金萬昌)은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장동리에는 김극일의 후손인 김의현(金義鉉)이 영광에서 이거하였고, 그 자손이 지금도 살고 있다. 또 경파 김처대(金處大)도 들어와 그 자손이 살고 있다. 역시 상서면의 장춘동에는 김인열(金仁烈)과 김의열(金義烈)의 사촌이 전라남도 영광에서 이거하여 그 자손이 세거하였다.

보안면 남포리에는 경파 김제환(金濟煥)이 들어왔는데, 증통정대부 승정원 동부승지(贈通政大夫承政院同副承旨)를 지냈다. 아들 김창식(金昌植)과 손자 김현기(金顯奇)도 증직의 교지를 받았다. 수랑리에는 김규영(金圭榮)이 전라남도 무안에서 들어왔는데 고종(高宗) 조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좌랑(佐郞)과 두 곳의 수령을 거쳐 통례원 좌통례(通禮院左通禮)에 이르렀다. 현재 그 자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백산면 봉동에는 김상표(金相杓)가 처음 들어와 살았고 대산리에는 절효공의 후손인 김국갑(金國甲)의 자손들이 대대로 살고 있다.

줄포면 대동리에는 경파인 김태현(金兌鉉)이 충청도에서 들어와 그 자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장동에는 절효공 김극일(金克一)의 후예 김성형(金聲衡)이 서울에서 들어왔으며 호가 지봉(芝峰)인데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 참판의 관직을 받았다. 난산리에는 김극일의 후손인 김한려(金漢麗)가 전라남도 영광에서 들어왔고, 그 자손이 세거한다.

위도 진리에는 동창(東窓) 김준손(金俊孫)의 후예인 김산(金珊)이 들어와 그 자손이 지금도 세거하고 있다.

변산면 언포리 김해 김씨는 김만창(金萬昌)의 자손이다. 김극일의 후손으로 통정대부 절충장군(通政大夫折衷將軍)의 직을 받았다. 합구리 김해 김씨는 김일손의 6세손 김목(金睦)의 자손들이다. 김목의 호는 운암(雲岩)인데 금곡처사(金谷處士)로도 불렀다. 김목의 아들 김성모(金聲謨)는 호가 학수(鶴叟)로 통정대부의 직을 받았으며, 김목의 아들 김화장(金和章)은 호가 죽헌(竹軒)으로 가선대부였다. 김화장의 아들 김정빈(金挺彬)은 호가 학남(鶴南)이며 역시 가선대부였으며 김정빈의 아들 김현규(金顯圭)는 호가 우학(又鶴)이며 가선대부, 김현규의 아들 김재관(金再寬) 또한 가선대부였다.

진서면 운호리에는 절효공의 후손인 김영국(金永國)이 들어와서 그 자손이 대대로 세거하고 있다. 석포리에는 고창 무장에서 김윤오(金允五)가 들어와 그 자손이 세거하고 있다.

하서면 금강동에는 나주에서 김재환(金再煥)이 들어와 살았다. 김재환은 증자헌대부 호조 판서(贈資憲大夫戶曹判書)였고 김재환의 아들 김국원(金國源)도 증가선대부 한성 부윤(贈嘉善大夫漢城府尹)이었으며, 그 손자 김창수(金昌守)도 증통정대부 승정원 동부승지(贈通政大夫承政院同副承旨)를 제수 받았다.

[현황]

2015년 인구 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부안군에는 김해 김씨 4,911명이 살고 있다.

[관련 유적]

김유신을 모신 보령원이 부안군 상서면 봉은길 90-5[감교리 658-16번지]에 있으며, 김행원 정려부안군 행안면 역리 566-1번지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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