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514
한자 崔甲龍旌閭
이칭/별칭 전주 최씨 정려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하장길 2[하장리 490]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경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73년연표보기 - 최갑룡 정려 건립
현 소재지 최갑룡 정려 -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하장길 2[하장리 490]지도보기
성격 정려문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전주 최씨 문중
관리자 전주 최씨 문중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하장리에 있는 개항기 정려문.

[개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충효 사상과 정절을 으뜸으로 삼았다. 조정에서도 이를 적극 권장하여, 충효열(忠孝烈)에 뛰어난 사람을 뽑아 정려(旌閭)를 내려 백성의 귀감이 되게 하였다. 정려의 종류에는 정려비와 정려문, 정려각 등이 있다. 최갑룡 정려(崔甲龍旌閭)는 개항기에 전주 최씨(全州崔氏) 최갑룡(崔甲龍)[1786~1864]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최갑룡의 본관은 전주, 자는 내언(乃彦)이다. 참봉(參奉) 최극성(崔克成)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를 증직받은 자(字)가 상대(尙大)인 최인덕(崔仁德), 아버지는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증직받은 최수택(崔峀澤)[1748~1829]이다. 외할아버지는 김해 김씨(金海金氏) 김성일(金成日)이다.

최갑룡은 1786년(정조 10)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기는 데 있어 효도를 다하였다. 어머니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어머니의 대변을 맛보고 병의 증세를 짐작하여 약을 썼으며, 밤에는 하늘에 쾌유를 빌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예(禮)에 따라 상(喪)을 치르고 3년간 여막(廬幕)을 치고 시묘(侍墓)살이를 하였다. 최갑룡은 1834년(순조 34)에 홍수가 나서 집과 가산이 떠내려가고, 수백 명의 인명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바로 큰 배를 내어서 사람들을 구하였다. 또 1839년(헌종 5)에는 흉년으로 많은 사람이 굶주림을 면하지 못하자 쌀을 내놓아서 그들을 구휼하였다. 조정에서는 최갑룡의 효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1873년(고종 10)에 효자 정려를 내렸다. 최갑룡의 묘는 정읍시 치령[흑암동 산35번지]에 있다.

[위치]

최갑룡 정려는 부안군 동진면 하장길 2[하장리 490번지] 전주 최씨 재실인 영모재(永慕齋) 문에 있다. 부안읍에서 혜성병원을 거쳐 고마제 저수지로 가는 길을 따라 직진하면 K컨벤션웨딩홀 사거리가 나온다. 사거리에서 김제 방면으로 고마제로를 따라가면 저수지 끝 부근에 로터리가 있고, 로터리에서 3시 방향으로 직진하면 부안군 동진면 하장리로 가는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곳에서 동진남로를 따라가면 폐교[동성초등학교] 끝자락에 전주 최씨 재각이 보인다. 이곳이 최갑룡의 정려가 있는 곳이다.

[변천]

1873년에 정려를 받아 건립하였다.

[형태]

정면은 3칸, 측면은 1칸이다. 전주 최씨 재실 영모재(永慕齋) 솟을대문에 정려 현판이 걸려 있다. 내용은 ‘효자무과급제증가선대부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최갑룡지려 상지십년계유구월 일 명정(孝子武科及第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崔甲龍之閭 上之十年癸酉九月 日 命旌)’이라 되어 있다.

[현황]

최갑룡 정려전주 최씨 문중이 소유하여 관리하고 있다. 전주 최씨 재실 영모재와 함께 관리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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