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397
한자 龍華寺彌勒佛立像
이칭/별칭 부안 용화사 미륵불입상,용화사 석불입상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물/불상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행안면 미륵골길 43[역리 342]
시대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진정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9년 7월 9일연표보기 - 용화사 미륵불입상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71호 지정
현 소장처 용화사 - 전라북도 부안군 행안면 미륵골길 43[역리 342]지도보기
원소재지 용화사 - 전라북도 부안군 행안면 미륵골길 43[역리 342]
성격 석불 입상
재질
크기(높이) 450㎝
관리자 용화사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71호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행안면 역리 용화사에 있는 고려 시대 석불 입상.

[개설]

용화사 미륵불입상(龍華寺彌勒佛立像)용화사(龍華寺) 뒤편 야산에 있는 미륵불로, 1999년 7월 9일에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71호로 지정되었다. 절에서는 백제 승려 묘련(妙蓮)이 642년(의자왕 2)에 창건한 미륵사(彌勒寺)에 있던 미륵불이라고 하나, 석불의 양식을 볼 때 틀린 이야기이다.

[형태]

높이 450㎝의 석불 입상으로, 머리에 둥근 모양의 천개를 착용한 돌기둥 형태를 보인다. 네모난 얼굴은 이목구비를 큼직하게 만들어 시원한 느낌을 준다. 반쯤 뜬 눈은 눈초리가 치켜져 있어 매서운 편이다. 백호(白毫)는 표현되어 있지 않으나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큰 얼굴에 비해 신체는 빈약한 편이다. 옷은 내의 위에 양쪽 어깨를 모두 덮은 대의(大衣)를 걸친 모습을 보인다. 내의는 다른 불상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V’ 자로 파여 있어 생소한 모습이다. 대의는 옷 주름이 촘촘이 새겨져 있으나, 매우 단순하고 도식적이다. 양손은 복부 언저리에서 모두 소매에 넣고 있다. 석불 앞에는 가로 228㎝, 세로 210㎝ 규모의 정교하게 다듬은 돌이 있는데, 그 중앙에 네모난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석불의 대좌(臺座)로 추정된다.

[특징]

용화사의 석불을 통상 미륵불 입상으로 부르지만, 절에서 내려오는 이야기 이외에 그것을 증명할 만한 것은 없다. 다만, 야외에 있는 석불이 미륵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에서 미륵불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용화사 미륵불입상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직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논산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論山開泰寺址石造如來三尊立像)[보물 제219호]에서 시작된 고려 신양식 석불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11세기 중엽 이후 등장하는 세장한 돌기둥 같은 신양식 석불과 달리 건장한 비례와 양감을 보여 그보다는 앞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1000년을 전후한 시기 왕실 주도로 조성된 매산리 석불입상(梅山里石佛立像)[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37호]이나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論山灌燭寺石造彌勒菩薩立像)[국보 제323호]과 달리, 천개가 원형으로 변모하였고 뒷면에 아무런 조각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하여 볼 때, 용화사 미륵불입상은 11세기 초 부안 지역민과 지역의 장인이 참여하여 조성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의의와 평가]

용화사 미륵불입상은 고려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불상 양식이 11세기 무렵 부안 지역에까지 확산되었음을 보여 주는 한편, 거란의 침입이 있었던 11세기 초 지역의 호장층이 중심이 된 거현적인 향도 결사가 불상 조성에 참여하였음을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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