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량매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348
한자 欣良買縣
영어공식명칭 Heunryangmae-hyeon
이칭/별칭 낭주(浪州),희안(喜安),보안(保安)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최범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할 지역 흔량매현 - 전라북도 부안군

[정의]

고대 백제가 전라북도 부안군 남부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개설]

흔량매현(欣良買縣)은 백제가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을 중심으로 부안군 남부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인 현(縣)이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제37 잡지(雜志) 제6 지리(地理)4 백제 조에 “완산 … 고사부리군, 개화현, 흔량매현, 상칠현[完山 … 古沙夫里郡 皆火縣 欣良買縣 上柒縣]”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삼국사기』 권제36 잡지 제5 지리3 신라 조에, “고부군 … 거느리는 현이 셋이다. 부령현은 본래 백제의 개화현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까지 그대로 따른다[古阜郡 … 領縣三. 扶寧縣 本百濟皆火縣 景德王改名 今因之].”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 권57 지(志) 권11 지리2 전라도 고부군 보안현 조에, “보안현은 본래 백제의 흔량매현으로, 신라 경덕왕 때 이름을 희안으로 고치고, [고부군에] 내속하였다. 고려에 와서 지금 이름으로 바꾸고, 그대로 [고부군에] 소속시켰다. 뒤에 부령 감무가 겸임하게 하였다. 우왕 12년 [보안과 부령에] 각각 감무를 두었다. 별호는 낭주이다. 변산이 있다. 위도가 있다[保安縣本百濟欣良買縣 新羅景德王 改名喜安 來屬. 高麗 更今名 仍屬 後以扶寧監務 來兼. 辛禑十二年 各置監務. 別號浪州. 有邊山. 有猬島].”라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권151 전라도 전주부 부안현 조에, “부령현은 본래 백제의 개화현이었는데, 신라에서 부령현으로 고치고, 보안현은 본래 백제의 흔량매현이었는데, 신라에서 희안현으로 고치어, 모두 고부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에서 희안을 고쳐서 보안현으로 하고, 뒤에 부령으로 보안 감무를 겸하게 하였다가, 홍무 19년 병인에 다시 나누었다. 본조 태종 14년 갑오에 보안을 부령에 합치었다가, 다음 해 을미에 또 나누었고, 그해 8월에 다시 합쳤다가, 또 다음 해 병신 7월에 또 나누었고, 12월에 다시 합쳐서 부안현으로 고쳤다[扶寧縣 本百濟 皆火縣 新羅改扶寧縣. 保安縣 本百濟 欣良買縣 新羅改喜安縣 皆爲古阜領縣. 高麗改喜安 爲保安縣 後以扶寧 兼保安監務 洪武十九年丙寅 復分之. 太宗十四年甲午 以保安合于扶寧 明年乙未 又分之 其年八月 復合 又明年丙申七月 又分之 十二月 復合 改扶安縣].”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흔량매현은 지금의 부안군 남부, 곧 보안면줄포면, 진서면, 변산면, 상서면 서남부 등 변산 일대에 있었고, 치소는 보안면 고현리(古縣里)에 있었다.

[변천]

신라가 백제를 병합한 뒤 757년(경덕왕 16) 관부와 관직 이름 및 지방 행정 지명을 모두 중국식으로 바꾸는 한화 정책의 일환으로 흔량매현희안현(喜安縣)으로 고치고 고부군의 영현(領縣)으로 만들었다. 이후 고려 시대에는 보안현(保安縣)으로 이름을 고쳤다. 그 뒤 부령현(扶寧縣) 감무(監務)가 겸임을 하다가 1386년(우왕 12) 따로 감무를 배치하게 된다. 보안현은 조선으로 들어와 1414년(태종 14)부터 부령현과 합치고 나누기를 되풀이하다가 1416년(태종 16) 12월 부령현과 병합하고 부안현(扶安縣)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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