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260
한자 界火島干拓事業
영어공식명칭 Gyehwado Reclamation Project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성욱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도와 육지인 동진면하서면을 연결한 간척 사업.

[개설]

계화도 간척 사업 은 1963년부터 1968년까지 부안군 계화도[행안면]와 동쪽의 동진면을 연결하는 제1방조제 및 계화도와 남쪽의 하서면을 연결하는 제2방조제를 축조하여 계화도와 육지 사이에 27.04㎢의 농경지를 조성한 간척 사업이다.

[계화도 간척 사업의 추진 과정]

계화도 지역은 일제 강점기인 1944년 일본인들에 의하여 조선농지개발영단(朝鮮農地開發營團)이 창설되어 방조제를 축조하여 경지화하려 하였으나, 8·15 광복으로 중단되었다. 이후 1962년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1965년 임실군 운암면의 옥정 댐 하류에 섬진강 댐을 만들면서 발생한 수몰민 2,786세대의 이주와 정착을 목적으로 계화도 간척 사업이 계획되었다.

계화도와 동쪽의 동진면을 연결하는 제1방조제[9,254m]를 1963년에 착공하여 1966년에 완공하였고, 계화도와 남쪽의 하서면을 연결하는 제2방조제[3,556m]를 1965년에 착공하여 1968년에 완공하였다. 총 매립 면적 39.68㎢ 중에서 27.04㎢는 농경지로 만들었고, 12.64㎢는 인공 저수지인 청호 저수지와 계화 조류지, 용수 및 배수로로 조성하였다. 계화도 간척지는 광복 후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대의 간척지로 식량 증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원래 계화도변산반도의 북단 하서면에서 약 4㎞ 정도 떨어져 있는 섬으로 동쪽은 동진면, 남쪽은 행안면하서면과 접하였고, 북쪽과 서쪽은 황해에 면해 있었다. 계화도와 육지 사이에는 간석지가 있었고 갯골을 통해서 배가 드나들었다. 계화도는 간척 사업 이전에는 행정 구역상으로 부안군 행안면 계화리[현 계화면 계화리]였다. 계화도에는 동쪽에 계상(界上)·계중(界中)·계하(界下), 북쪽에 양지촌, 남쪽에 살금, 서쪽에 장재원마을이 있었으며, 주민들은 연근해에서 어업과 간석지에서 백합·바지락·굴·새우를 잡는 일에 종사하였다.

계화도에는 계화산 동쪽 계상리·계중리·계하리 등에 기존 마을이 집중되어 있었으나, 이주민을 위한 새로운 주택들이 추가로 건설되었다. 그리고 제1방조제와 계화도가 만나는 곳에 제1배수 갑문이 설치되었고, 갑문 밖으로는 어촌인 계화도 양지항[양지촌]이 있다. 그러나 계화도 간척지 자체에는 마을이 없고 구획된 농경지와 수로(水路)만으로 구성되었으며, 주변 지역[창북, 계화, 돈지]에 새로운 주택 지역이 조성되었다. 계화도 간척지는 2006년 새만금 간척 사업의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완공됨에 따라 바다로부터 격리된 내륙이 되었다.

[계화도 간척 사업으로 인한 지역 변화]

1968년 두 개의 방조제가 완공된 이후 1968년부터 1978년까지 10년간에 걸쳐 청호 저수지·동진 도수로·조포 지구 개답·계화 지구 개답 및 취락 건설 사업 등을 완공하여 미곡 생산 농경지로 변모하였다. 이 간척 공간을 가로질러 동쪽의 창북에서 계화도[계중]를 연결하는 도로가 개설되었고 제1방조제와 제2방조제에는 지방도 제705호선이 개설되었다. 계화도 간척지는 1963년 간척 사업을 개시하여, 1977년부터 농사를 시작하였다.

개답 후에 간척지 내부에는 순수하게 농경지만 조성되었고, 기존의 해안가인 창북[동], 계화[서], 돈지[남] 등에 1,000여 동의 주택을 신축하여 주택 단지를 조성하였다. 특히 계화면의 행정 및 서비스 기능을 담당하는 창북리계화면의 중심지로 조성되었다. 간척 사업에 의해 생긴 간척지와 행안면 일부와 동진면 일부를 포함해서 1976년 10월에 부안군 행안면에서 분리되어 계화 출장소[창북리]가 설치되었고, 1리 5개 마을을 관할하게 되었다. 1983년 2월에 계화면으로 승격하였다[5리 27개 마을]. 5리는 창북리·계화리·궁안리·양산리·의복리이다.

계화면은 부안군의 북서부에 위치하며 면적은 49.09㎢이다. 2020년 7월 현재 인구는 3,514명[남자 1,774명, 여자 1,740명]이고, 면 소재지는 창북리이다. 계화면의 교육 기관으로는 계화중학교, 계화초등학교, 창북초등학교가 있다. 계화산 정상에 봉화대가 있고, 조선 말의 유학자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가 기거하던 영정각과 부근에 전우를 기리는 청풍대비(淸風臺碑)가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벼농사를 주로 하며, 생산된 쌀은 계화미(界火米)라 하여 질이 좋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방조제 밖의 간석지에서는 바지락·백합·김 양식이 활발하고 해안 취락에는 수산물 가공업이 발달해 있다. 그러나 새만금 간척 공사 이후에 생태계의 변화로 수산 양식업이 쇠퇴하였다. 계화면의 경지 면적은 총 32.12㎢로, 논이 31.98㎢이고 밭이 14만㎥이다. 호당 경지 면적은 2만 6500㎥로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다. 농작물 현황은 식량 작물 면적이 99.2%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중 미곡 생산이 99%로 압도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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