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182
한자 雉島里
영어공식명칭 Chido-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치도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진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영광군 위도면 치도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63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영광군 위도면 치도리에서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치도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3.48㎢
가구수 127가구
인구[남/여] 214명[남 102명/여 112명]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치도리(雉島里)는 마을 뒷산이 마치 꿩의 모양과 같다고 하여 ‘꿩 치(雉)’ 자를 접두어로 붙여 만든 지명이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심구미를 병합하여 전라남도 영광군의 위도면 치도리로 개설하였다. 1963년 위도면이 부안군에 편입되어 부안군 위도면 치도리가 되었다.

치도리위도에서 파시가 가장 먼저 열렸던 곳이다. 치도리 해안이 치도리 당집 아래부터 대리로 가는 모퉁이까지 이어지는데, 위도에서는 가장 넓은 갯벌[장불]이 펼쳐져서 파시가 서면 각지에서 몰려든 배들로 북적였다. 또 조기잡이 배들을 뒤따라온 상인들이 세운 천막과 임시 건물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광복을 전후하여 풍선배에서 동력선[통통배]으로 바뀌면서 위도 파시치도리에서 진리 파장금으로 옮겨 갔다. 풍선배는 갯벌에 올려놓으면 그대로 정박이 가능하기 때문에 치도리 갯벌에 배를 대기가 유리하였으나 동력선은 요즘처럼 바닥이 깊은 선착장이 있어야 접안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파장금은 치도리에 비해 해안은 협소하지만 수심이 깊어 물때와 관계없이 배들이 드나들 수 있어 포구로서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치도리의 임시 가옥과 달리 건물들이 들어서고 목욕탕, 이발소, 다방, 술집, 여관, 세탁소, 잡화점, 어구점, 선박 수리점 등이 성업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처럼 성황을 이루던 파시는 1970년부터 조기 떼가 사라지고 삼치가 몰려왔다가 그마저도 1970년 중반부터 사라지면서 치도리를 비롯한 위도는 한적한 어촌으로 변하였다.

[자연환경]

위도에는 치도리대리, 진리 등의 해안가에 갯벌이 발달하여 있으나 특히 치도리의 갯벌 상태가 가장 좋다. 하섬처럼 썰물 때는 갯벌이 드러나 딴치도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 예전에는 축구를 할 정도로 갯벌이 단단하였으나 새만금 간척 사업을 시작하면서 펄이 쌓이고 있다. 큰딴치도, 작은딴치도, 대형제도 등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졌으며, 치도리 뒷산에 위도에서 가장 큰 동백나무 숲이 있다.

[현황]

치도리위도면의 동부에 자리하며 북쪽은 진리, 남쪽은 대리와 접한다. 면적은 3.48㎢이며, 이 중 밭이 0.22㎢, 논 0.07㎢, 임야 2.93㎢ 등이다. 2020년 12월 31일 현재 치도리·깊은금리의 2개 행정리에 127가구, 214명[남 102명/여 11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치도리 남쪽의 깊은금로 변에는 깊은금마을이, 깊은금로와 위도로 및 진리잔등로가 만나는 곳에 치도마을이 있다. 치도마을에 위도초등학교, 치도 어촌계 사무소 등이 있어 주민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바지락과 굴이 주요 생산물이다.

2021년 2월 현재 위도면 치도리 산192-1번지위도면 대리 산2-1번지 일원에 41만 9000㎡ 규모의 힐링 공간인 ‘치유의 숲’을 조성 중이다. 치도리 치유의 숲에는 치유센터 1동, 숲속의 집 4동, 치유숲길 4.7㎞, 치유 정원 등 숲을 이용한 다양한 힐링 공간이 조성된다. 특히 야외에 조성되는 치유의 숲은 위도면의 자생 소나무와 바다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명상장, 숲길, 치유정원 등이 조성될 계획이다. 이 치유의 숲은 제주도를 제외하고 국내에서 유일한 섬 속 치유의 숲이다.

치도리에서 조금 떨어진 깊은금마을 뒷산 부근에는 위도면에서는 유일한 사찰인 내원암이 있다. 내원암 입구에는 동백나무, 귀목나무, 배롱나무가 서 있다. 배롱나무의 수령은 약 400년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다.

치도마을 앞에는 무인도 두 개가 있는데 큰치도, 작은치도라고 부른다. 1931년 4월과 8월, 12월 등 세 차례에 걸쳐 심한 태풍이 불어 당시 큰치도 부근에서 조업을 하던 500여 척의 어선이 조난을 당하여 600여 명의 어부 및 선원들이 해난 사고를 당하였다. 당시 목숨을 잃은 선원 및 어선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비가 치도마을에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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