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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624
한자 金弘遠
영어공식명칭 Gim Hongwon
이칭/별칭 이중(而重),해옹(海翁)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71년연표보기 - 김홍원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88년 - 김홍원 진사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624년 - 김홍원 회양부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27년 - 김홍원 담양부사 제수
몰년 시기/일시 1645년연표보기 - 김홍원 사망
출생지 김홍원 출생지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지도보기
부임|활동지 김홍원 부임지 - 전라남도 나주시
부임|활동지 김홍원 부임지 - 강원도 회양군
부임|활동지 김홍원 부임지 - 전라남도 담양군
묘소|단소 김홍원 묘소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금동길 51-8[장동리 406-43]지도보기
사당|배향지 김홍원 신도비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금동길 51-8[장동리 406-43]지도보기
성격 문신|의병장
성별
본관 부안(扶安)
대표 관직 회양부사|담양부사

[정의]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가계]

김홍원(金弘遠)[1571~1645]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이중(而重), 호는 해옹(海翁)이다. 아버지는 증호조 참판(贈戶曹參判) 김경순(金景順)이고, 아들은 순천부사(順天府使) 김명열(金命說)이다.

[활동 사항]

김홍원은 1571년(선조 4)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에서 태어났으며, 1588년(선조 21)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김홍원은 군졸(軍卒)과 병량(兵糧)을 모아 전쟁에 나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 조부상(祖父喪)을 당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대신 김홍원은 모아 둔 곡식 100여 석을 선유사(宣諭使) 윤승훈(尹承勳)으로 하여금 선조의 행재소(幸在所)인 의주로 보내게 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김홍원변산(邊山)으로 피안(彼岸)하여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의병으로 나갈 것으로 권유하였다. 그리고 전라도 전역에 격문(檄文)을 보내어 의병을 모은 후 추포(秋浦) 황신(黃愼)과 함께 전투에 참여하여, 남쪽으로 내려오는 일본군을 전라도 순창까지 추격하여 크게 무찔렀다. 그리고 순천(順天) 석보창(石堡倉)에 머무르고 있는 적들의 막사에 화약을 폭파한 후 혼비백산하는 적을 무찔렀다.

황신이 김홍원의 활약을 조정에 보고하니, 선조는 김홍원에게 통정(通政)의 품계를 내렸다. 김홍원이 자신에게는 공이 없다며 사양하는 상소를 올리자, 이에 선조는 김홍원을 칭찬하는 비답(批答)을 내렸다. 김홍원은 또 명(明)나라 장수 유정(劉綎)의 부탁에 따라 자신이 거느리는 군사 1,000여 명을 남원에 머무르게 하면서 왜적 방어의 선두에 서게 하였다. 그러자 유정이 “참다운 의사(義士)다”라는 글을 써 주었다고 한다. 1624년(인조 2) 회양부사에 제수되고, 1627년(인조 5) 담양부사에 제수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로는 변산 바닷가에 정자를 짓고 스스로 ‘해옹(海翁)’이라 칭하며 시문(詩文)을 즐기다가 1645년(인조 23) 향년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시문집으로 『해옹집(海翁集)』이 있다.

[묘소]

묘소와 묘비는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금동길 51-8[장동리 406-43]에 있다.

[상훈과 추모]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무찌르는 데 공을 세워 선무원종일등공신(宣武原從一等功臣)에 책훈되고, 호조 판서로 증직되었다. 김홍원의 묘소 가까이 김홍원 신도비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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