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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613
한자 崔秀孫
영어공식명칭 Choe Suson
이칭/별칭 고궁당(固窮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지 최수손 출생지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지도보기
묘소|단소 최수손 묘소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 석동산지도보기
사당|배향지 도동서원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본관 전주(全州)

[정의]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학자.

[가계]

최수손(崔秀孫)[?~?]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고궁당(固窮堂)이다. 할아버지는 송애(松崖) 최광지(崔匡之)이고, 아버지는 옹암(甕庵) 최생명(崔生明)이다. 아들로 최순성(崔順成)과 최극성(崔克成)을 두었고, 손자는 단성현감(丹城縣監) 최위(崔渭)이다.

[활동 사항]

최수손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에서 태어났다. 한때 관직에 대한 희망도 있었지만,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누이의 아들인 박사(博士) 성중엄(成重淹)이 화를 입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으며, 조정에서 여러 차례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오직 학문에만 정진하였으며 후학을 기르는 데 힘을 쏟았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는데, 김굉필은 최수손의 학문과 행의(行誼)가 순박함을 보고 “우리 도(道)가 사람을 얻었다”라고 칭찬하며 매우 기뻐하였다고 한다.

언젠가 최수손은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인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에 다섯 그루의 괴목나무를 심으면서 말하기를 “내 아들들이 반드시 현달하여 다섯 번의 북을 울리리라” 하였다. 이후 최수손은 결혼하여 오 형제를 두었는데, 이들이 모두 과거에 성공하여 그의 말처럼 다섯 번의 북을 울리게 되었다. 이에 정자를 짓고 ‘오고(五鼓)’라는 현판을 걸었으니, 마을 사람들은 이를 오고정(五鼓亭)이라 불렀다. 최수손의 다섯 아들 중에 최순성과 최극성은 1516년(중종 11) 문과에 나란히 급제하였으며, 나머지 삼 형제는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묘소]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 석동산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에 있던 도동서원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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