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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508
한자 黃碩政旌閭
이칭/별칭 우주 황씨 정려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증산길 93-2[증산리 62]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경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79년연표보기 - 황석정 정려 건립
현 소재지 황석정 정려 -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증산길 93-2[증산리 62]지도보기
성격 정려각
양식 겹처마 팔작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우주 황씨 황용규
관리자 우주 황씨 황용규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증산리에 있는 개항기 정려각.

[개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충효 사상과 정절을 으뜸으로 삼았다. 조정에서도 이를 적극 권장하여, 충효열(忠孝烈)에 뛰어난 사람을 뽑아 정려(旌閭)를 내려 백성의 귀감이 되게 하였다. 정려의 종류에는 정려비와 정려문, 정려각 등이 있다. 황석정 정려(黃碩政旌閭)는 개항기에 우주 황씨(紆州黃氏) 황석정(黃碩政)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황석정의 본관은 우주(紆州), 자는 지찬(智贊)이다.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낸 황거중(黃居中)의 12세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황정곡(黃廷鵠), 증조할아버지는 황세공(黃世功), 할아버지는 황수발(黃壽發)이고, 아버지는 황용회(黃龍會)이다. 외할아버지는 제주 고씨(濟州高氏) 고운수(高雲秀)이다. 1785년(정조 9)에 출생하였다.

황석정은 1804년(순조 4)에 아버지가 죽어 상(喪)을 당(當)하고 있음에 예를 다하였고, 편모(偏母)를 지성으로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병중에 싱싱한 오이를 원하였지만 때가 겨울이라 구할 수 없었는데, 문득 밭이랑 사이에서 푸른 오이를 발견하니 효성이 천지를 감동시켰다고 하였다. 또 어머니가 이질(痢疾)로 고생하자 대변을 맛보고 하늘에 빌었으며,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수일간 연명하게 하였다. 1813년(순조 13)에 모친상을 당하자 몹시 애통해 하였으며, 죽을 때까지 성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에 조정에서 1869년(고종 6)에 효열을 칭찬하여 정려를 내렸으며, 1879년(고종 16)에 정려각을 세웠다. 황석정은 1885년(고종 22)에 향년 71세로 사망하였으며, 무덤은 사치 선영에 있다. 장인은 파평 윤씨(坡平尹氏) 윤영상(尹英商)이다.

[위치]

황석정 정려부안군 동진면 증산리 증산마을에 있다. 동진초등학교 삼거리에서 문포 방면으로 가다가, 동진 협동 미곡 처리장을 지나 사거리에서 순환북로를 따라 좌회전하여 약 1.2㎞ 정도 직진하면, 좌측에 증산 보건 진료소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여 마을 길로 들어가면 증산 보건 진료소 맞은편에 정려각이 있다.

[변천]

1869년에 정려를 받았으며, 1879년에 정려각을 세웠다.

[형태]

정려각 전면에만 담장이 있다. 담장의 중앙에 1칸의 문이 있으며, 문 위에는 ‘효려(孝閭)’라고 쓴 현판이 있다. 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정려각이 있다. 정려각은 화강암으로 만든 기단 위에 있으며, 화강암의 기초 위에 나무 기둥을 올렸다.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길이는 각 260㎝와 240㎝이다. 활주는 화강암으로 만든 기둥 위에 나무 기둥을 올렸다. 정려각의 사면에 창살을 만들었고, 정면에 문을 만들었다.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려각 위쪽에 ‘효자증동몽교관조봉대부황석정지려(孝子贈童蒙敎官朝奉大夫黃碩政之閭)’라고 쓴 현판이 있다.

[현황]

황석정 정려는 우주 황씨 황용규가 소유하여 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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