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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507
한자 宋潤八旌閭
이칭/별칭 송윤팔 효자각,여산 송씨 정려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예동길 48-12[신흥리 538]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경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01년연표보기 - 송윤팔 정려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55년 - 송윤팔 정려 부안군 부안읍 신흥리에서 주산면 소주리로 이전
개축|증축 시기/일시 1955년 - 송윤팔 정려 중건
현 소재지 송윤팔 정려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예동길 48-12[신흥리 538]지도보기
원소재지 송윤팔 정려 -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소주리지도보기
성격 효자 정려
양식 겹처마 팔작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여산송씨 원윤공파 판서공가
관리자 여산송씨 원윤공파 판서공가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신흥리에 있는 개항기 효자 정려.

[개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충효 사상과 정절을 으뜸으로 삼았다. 조정에서도 이를 적극 권장하여, 충효열(忠孝烈)에 뛰어난 사람을 뽑아 정려(旌閭)를 내려 백성의 귀감이 되게 하였다. 정려의 종류에는 정려비와 정려문, 정려각 등이 있다. 송윤팔 정려(宋潤八旌閭)는 개항기에 송윤팔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송윤팔의 본관은 여산(礪山)이고, 도봉(道峰) 송세정(宋世貞)의 후손이다. 1836년(헌종 2)에 아버지 송철석(宋哲錫)과 어머니 김해 김씨(金海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하늘에 뿌리를 둔 효자로서 새벽에는 일찍 일어나 아버지의 자리를 살폈으며, 저녁에는 이부자리를 까는 것에 하루도 게으름이 없었다. 부모가 죽은 후에는 오로지 예에 따라 치상(治喪)을 치렀다. 조정에서 송윤팔의 효행을 듣고 1901년(고종 38)에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을 내리고, 아울러 정려를 내렸다.

[위치]

송윤팔 정려는 부안군 부안읍 예동길 48-12[신흥리 538번지] 제실 북서쪽 옆에 있다. 부안군 부안읍에서 지방도 제707호선을 따라 주산 방면으로 직진하면 주산파출소를 가기 전에 예동길로 들어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직진하여 500m 정도 가면 좌측에 양계장이 나오는데, 양계장 앞 우측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여산 송씨의 제실과 효자 정려가 있다. 부안군 주산면 백석리 예동마을과 가깝지만 행정 구역상으로는 부안읍 신흥리 삼거마을에 속한다.

[변천]

1901년에 부안군 주산면 소주리 와상마을에 정려를 세웠다가, 1955년 중건할 때 부안읍 신흥리 삼거마을로 옮겨 지었다.

[형태]

정려각은 담장이 없으며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길이는 정면이 230㎝, 측면이 200㎝이다. 사각의 주춧돌 위에 원형의 나무 기둥을 얹었다. 활주는 사각형의 화강암 기초 위에 나무 기둥을 올렸다. 정려각의 전면에는 ‘효자려(孝子閭)’라고 쓴 현판이 있다. 정려각에는 ‘효자증조봉대부동몽교관송윤팔지려 성상이십팔년신묘육월일 명정(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宋潤八之閭 聖上二十八年辛卯六月日 命旌)’이라 쓴 현판이 있다.

[현황]

송윤팔 정려여산송씨 원윤공파 판서공가가 소유하여 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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